[광화문에서/이진영]탁현민만 있으면 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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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안 자르는 게 아니라 못 자르는 것”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여성 비하 논란의 주인공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말이다. 셔츠 차림의 청와대 커피타임부터 5·18 유가족 안아주기까지 사람들을 웃고 울린 문재인 대통령의 이벤트는 모두 그의 솜씨다. 김정숙 여사의 친근한 ‘정숙 씨’ 이미지도 그의 기획이다. 2012년 대선 때 평범한 주부였던 김 여사를 끌어내 가수 이은미, 방송인 김제동, 배우 손숙 같은 문화계 인사들과의 인터뷰집을 기획 출간했는데, 책 이름이 ‘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였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탁현민 덕분”이라고 하니 청와대의 나영석 PD라고 해야 할까.

이벤트 정치는 대통령제 국가에서 활발하다. 대중적인 지지율에 기대어 껄끄러운 의회를 견제하고픈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라디오, 존 F 케네디는 TV, 버락 오바마는 SNS 대통령으로 불리며 국정 운영을 주도했다. ‘셀피 찍는 오바마’ ‘비서에게 우산 씌워주는 오바마’ 등 365일 홍보물이 쏟아져 “선거운동의 일상화”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한국의 경우 노무현 정부를 기점으로 대통령의 리더십이 국회 중심의 ‘입법적 리더십’에서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 의존하는 ‘대중적 리더십’으로 옮겨갔다고 김혁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가 분석했다. 감성적 이미지 정치와 유사 언론매체인 ‘국정브리핑’을 통한 대국민 홍보에 주력했던 때다. 김 교수는 이승만부터 이명박까지 역대 대통령의 국회 연설문 116개와 대국민 담화문 120개를 분석했는데, 노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은 22개로 박정희 대통령(31개) 다음으로 많았고, 단어 수도 다른 대통령들의 배가 넘었다. “존경하는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여러분”으로 시작하던 국회 연설문은 노 대통령 때부터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여러분”으로 바뀌었다. 정책 관련 내용은 국회 연설에 담던 관행도 바뀌어 대국민 담화와 국회 연설의 내용이 비슷해졌다.

하지만 김 교수는 “대중적 리더십이 입법적 리더십을 대체할 수는 없다. 성공적인 국회 없이 대통령의 성공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여소야대의 국면에만 해당되는 말일까. 박현석 KAIST 교수(정치학)는 1990년대 이후 대통령과 국회의 갈등과 타협 과정을 분석한 논문에서 제왕적 리더십은 김영삼 대통령이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여소야대 국면이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뿐만 아니라 여대야소의 이명박 정부에서도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여당마저 반기를 들어 국회와 타협이라는 과제를 비켜 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문바마’ 문 대통령의 롤 모델인 오바마 대통령이 레임덕 없이 임기를 마쳤던 비결도 국민뿐만 아니라 의회와의 부단한 소통 노력이었다. 그는 야당 의원들과의 위스키 소통, 스테이크 대화, 전화 릴레이로 상하원 모두 여소야대인 험한 정국에서 국정 운영의 돌파구를 찾아냈다.

누가 뭐라 하건 탁 행정관이 잘릴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문 대통령은 20일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간접민주주의 말고 직접민주주의’라면서 이벤트 정치를 이어갈 것임을 확인했다. 탁 행정관이 유능한 정치 이벤트 기획자라는 평가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이니’(문 대통령) ‘쑤기’(김 여사) 캐릭터의 힘만으로 100대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필요하다는 법률 465개를 제·개정할 수는 없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여성 비하 논란#탁현민#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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