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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이든 1948년이든 ‘건국’이라는 표현은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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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이든 1948년이든 ‘건국’이라는 표현은 무리”

조종엽기자 입력 2017-08-23 03:00수정 2017-08-2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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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이냐 1948년이냐… 두 학자, ‘건국절 논란’을 말하다
김명섭 연세대 교수(왼쪽)와 한시준 단국대 교수가 17일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건국 시점 논란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한 교수는 “‘건국’이란 표현은 이전에는 나라가 없었던 신생국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기에 ‘건립’이 합당하다”고 했고, 김 교수는 “1897년 대한국 수립의 의미, 1910∼1919년의 독립운동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은 몇 살인가’에도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1919년 건국설과 1948년 건국설 모두 각자 근거가 있다. 개천절이나 대한제국-대한민국의 연속성에 방점을 찍는 의견까지 더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9년 건국 100주년을 맞는다”(15일 광복절 경축사)는 말 한마디로 정리될 문제는 아니다.

동아일보는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63)와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54)의 대담을 마련했다. 한 교수는 임시정부 연구에서 업적을 낸 독립운동사 연구자로 최근에도 ‘역사농단’(역사공간) 등을 출간하며 ‘1919년 건국론’을 꾸준히 주장해왔다. 김 교수는 2018년 한국정치외교사학회장 취임 예정인 역사정치학 연구자다. 김 교수는 1980년대 386세대의 역사 인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해방전후사의 인식’(공저)의 필자로 지난해에는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대사 분야 필진으로 참여했다. 》


지난해 말 관련 학술대회에서도 격렬히 대립했던 두 학자에게 “합의의 폭을 넓혀 달라”고 주문했다. 두 학자는 “1919년이든 1948년이든 ‘건국’이라고 표현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발언을 평가해 달라.

▽한시준
=이명박 정부 당시 건국 시점 문제가 표면화할 때 역사학계는 1948년 건국이 사실이 아님과 부당성을 제기했다. 이번 발언은 1919년 대한민국 건국을 공식 천명했다는 의미가 크다.

▽김명섭=특히 대한민국의 주요 기원인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을 대통령이 직접 강조해 기대된다. 그러나 ‘1919년 건국’이라고 못 박으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광복 뒤 여운형 조만식 선생 등이 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만든 것도 당시 건국이 안 됐다고 본 거다. 임정이 국민주권을 천명했지만 권력을 위임받는 합법적 선거가 이뤄진 건 1948년이다. 대한민국은 1919년에 시작돼 1948년 수립된 것이다.


‘건국 시점이 뭐가 중요하냐’는 의견도 있다.

▽한=
국가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밝히는 일이다. 민족사로서도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두 번에 걸쳐 수립됐다. 1948년 제헌 국회의장이 된 이승만 박사는 자주독립정부 수립에 대해 누구보다 생각이 깊었다. 건국이라고 하면 미국이 나라를 세워주는 꼴이 되니, 그렇게 안 하고 1919년 세운 대한민국을 계승하고 재건한다고 했다. 당시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관철한 게 이 박사다. 1948년 건국 주장은 일제강점기를 우리 민족의 역사와 관계없는 것으로 만들고, 민족사를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김=만약 그에 동의한다고 해도 1910∼1919년의 공백이 생기지 않나. 한일 강제병합조약의 효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대한제국이 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일례로 만국우편연합은 ‘대한국(대한제국)’이 가입한 1900년을 오늘날 대한민국의 가입연도로 본다. 대한국을 1919년에 국민주권적으로 계승한 게 임정이고, 1948년 선거를 통해 국제적 승인을 받은 것이다. 1948년 당시 대한민국 ‘재건’이라고 주장한 주요 인물은 이승만 박사밖에 없다. ‘민국 30년’(1948년)이라는 연호도 컨센서스를 도출하지 못해 1949년부터 단기로 썼다. 임정이 독립운동의 구심이었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문창범(1870∼1938) 같은 분은 러시아 연해주가 독립운동 기지로 적합하다고 보고 임정에서 이탈해 활동했다. 1919년에 건국됐다고 마침표를 찍으면 이런 활동은 마치 ‘반국가단체’처럼 돼 버린다.

▽한=좌파인 김원봉을 비롯해 다양한 세력이 1944년이 되면 다 임정으로 들어온다. 이처럼 독립운동세력이 통합을 이루고 광복을 맞은 것은 세계적으로도 한민족이 유일하다.

▽김=광복 직후 아직 나라가 세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임시정부를 봉대하는 대신 건준-인민공화국을 지지했던 이들을 무조건 비난할 수 없다. 그런데 1919년 이미 건국이 됐다고 보면 이들은 ‘반역자’가 된다.

▽한=처음부터 완벽한 형태로 건국하는 예는 드물다. 쑨원(孫文)이 1911년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우지만 나중에 다시 나라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건국대강’을 발표한다. 아름드리나무도 처음에는 새싹이지만 나이는 새싹부터 센다. 임정을 세운 분들도 건국이라는 말에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1919년에 건국했다고 하면 열강들이 반만년 역사의 우리 민족이 마치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것으로 잘못 알지 않겠느냐는 우려 탓이었다. 그래서 단군이 나라를 세운 개천절을 건국기원절로 지정하고 기념행사를 했다. ‘건국절 제정’ 주장으로 논란이 시작된 탓에 이를 비판하는 측에서도 ‘건국’이라고 표현한 면이 있다. 대한민국 ‘건립’이라고 써야 합당하겠다.

▽김=좋은 말씀이다. 국제사회에서 대등한 국가로 공인받은 1897년의 대한국 선포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1919년이나 1948년만 강조하면 그런 기억이 사라진다.

―2019년은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가.

▽한=
논란을 종식시키고 대한민국 역사는 1919년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정립해야 한다.

▽김=당대인들이 사용한 용어를 존중해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정 수립 100주년’으로 기념해야 한다. 정부 수립이든 대한민국 수립이든, 내년에 맞는 70주년의 의미도 크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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