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부도 ‘강제징용 개인청구권’ 인정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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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안보]1991년 日 외무성 고위관리들 “한일협정으로 소멸안돼” 국회 답변
2000년대 들어 “소멸” 입장 바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로 개인청구권도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해온 일본 정부가 ‘국가 간 합의에도 개인청구권이 존재한다’는 입장을 1990년대까지 반복적으로 밝혀온 것으로 확인됐다. 일소(日蘇)공동선언의 청구권 포기와 관련해 일본 외무성 고위 관리가 국회에 나와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한 것을 일본 학계와 시민단체들이 속기록에서 찾아내 공개한 것이다.

이를 놓고 배상 책임이 어느 국가에 있느냐에 따라 말이 달라진다는 ‘이중 잣대’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에 책임이 있으면 개인청구권은 이미 끝난 문제라고 둘러대고 일본이 받아낼 여지가 있는 옛 소련(현 러시아)엔 청구권이 살아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기자회견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이나 대법원 판례로 강제징용자 개인의 민사적 보상 청구권이 인정되고 있다”고 밝히자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 즉각 항의한 바 있다.

공개된 일본 국회 의사록에 따르면 다카시마 유슈(高島有終) 외무성 외무대신관방은 1991년 3월 참의원에서 “일소공동선언에서 청구권 포기는 국가 자신의 청구권 및 국가가 자동적으로 갖는 것으로 생각되는 외교적 보호권(정부가 개인의 재판을 도와 줄 수 있는 권리)의 포기”라며 “일본 국민 개인이 소련이나 소련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일본인 피해자가 소련에 대한 청구권을 보유하고 있느냐’는 의원 질의에 이렇게 답변했다.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외무성 조약국장은 같은 해 8월 참의원에 출석해 “한일협정은 양국이 국가로서 갖고 있는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했다는 것일 뿐 개인청구권 자체를 소멸시켰다는 건 아니다”라며 한국인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앞서 한일협정 직후인 1965년 11월에도 시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외상이 중의원에서 “개인의 청구권을 포기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2000년대 들어 ‘개인의 청구권도 소멸했다’는 쪽으로 슬그머니 입장을 바꿨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5명이 2000년 미국 워싱턴 연방법원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한국 외교부는 지금까지 일본군 위안부와 달리 강제징용은 한일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이 때문에 일본에선 ‘또 골대를 옮기는 것이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문 대통령의 발언이 대법원 판결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한국의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는 70만 명으로 추산된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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