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백악관서 나온 주한미군 철수론, 美 부인해도 안도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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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배넌 미국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16일(현지 시간) 언론 인터뷰에서 “대북 군사적 해법은 없다. 잊어버려라”면서 중국이 북한 핵개발을 동결시키는 대가로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협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비록 “그런 딜(거래)은 요원해 보인다”고 덧붙였지만 백악관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거론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 언론에선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또는 축소가 대북 협상카드가 될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핵·미사일 동결을 위한 주한미군 철수나 연합 훈련 중단론은 북한 김정은이 ‘괌 포위사격’ 위협에서 한 발짝 물러선 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기조가 군사적 압박에서 협상을 통한 해결 쪽으로 급속도로 옮겨가면서 쏟아져 나왔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주장에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은 “한미 연합 훈련 중단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고 했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여전히 군사적 옵션은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주한미군 주둔이나 한미 연합 훈련이 단순히 한국 방위만이 아닌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한 것인 만큼 쉽사리 철수하거나 중단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미국의 움직임을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배넌 수석전략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최측근 책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를 은근히 노출시킨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북한 붕괴 후 주한미군 철수’를 중국과의 협상카드로 삼을 것을 조언하기도 했다. 배넌은 한발 더 나가 주한미군 철수를 북핵 동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카드로 거론했다. 먼 미래의 가능성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한미 연합 훈련 중단·축소는 북-미 대화국면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조만간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한미군 철수·감축론은 역사적으로 미국이 한국의 독재정권에 대한 압박용 또는 전 세계적 미군 전략의 변경에 따른 한국과의 협상용 카드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때 언급한 주한미군 철수론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노린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북한·중국과의 거래용으로 나왔다. 미국은 당장 자국 영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하는 형편이다. 주한미군이 빠지면 당장 100만 대군을 자랑하는 북한의 재래식 전력은 물론 핵·미사일에 맞서 한국 단독으로 방어해야 한다. 유사시 전략자산을 투입해 한국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약속도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도 김대중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평화를 지키는 안보를 넘어 평화를 만드는 안보를 이루겠다”고 평화론을 거듭 역설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평화를 지킬 준비가 돼 있는지부터 자문해야 한다.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 자강(自强), 즉 자주국방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의 동맹 이탈이나 이완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스티브 배넌#주한미군 철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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