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좁아” 살길 찾아 떠나는 반달곰을 어찌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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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슴곰, 인간과 공존할 길은…

14일 경북 김천시 수도산에서 발견된 반달가슴곰 KM-53은 산길 보수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놓아둔 초코파이를 뜯어먹고 있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인간들의 과자는 자연의 먹이보다 훨씬 달콤하기 때문에 후각이 예민한 동물들이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14일 경북 김천시 수도산에서 발견된 반달가슴곰 KM-53은 산길 보수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놓아둔 초코파이를 뜯어먹고 있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인간들의 과자는 자연의 먹이보다 훨씬 달콤하기 때문에 후각이 예민한 동물들이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반달가슴곰이 사드 기지에 침입하는 것 아냐?”

지난달 경북 김천시 수도산에서 반달가슴곰이 포획되자 온라인상에 떠돈 우스갯소리다. 6월 반달가슴곰 ‘KM-53’이 처음 방사된 지리산국립공원을 벗어나 직선거리로 80km 떨어진 김천 수도산에서 포획됐다. 자연적응훈련을 거쳐 재방사했더니 또 2주 만에 수도산에서 잡혔다. 수도산과 경북 성주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는 직선거리로 20여 km에 불과하다.

환경부는 17일 이 반달가슴곰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워크숍을 연다. 이 자리에선 대형 포유류 종 복원과 자연방사의 지속 가능성을 두고 토론할 예정이다. 환경부는 애초 곰이 수도산까지 이동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생태축 복원의 결과’라는 측면에서다. 하지만 시민들은 맹수인 곰이 위치추적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80km를 종횡무진했다는 사실에 우려를 나타냈다. 반달가슴곰의 개체 수가 점점 늘어나면 방사지를 벗어나 인간과 조우하는 횟수가 많아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과연 인간과 반달가슴곰이 공존할 수 있을지 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KM-53은 왜 수도산으로 갔나

난 2015년 1월에 태어난 수컷 반달가슴곰이다. 인간으로 치면 청년쯤 된다. 우린 그 나이가 되면 어미 품을 벗어나 독립한다. 나 역시 가족을 떠나 먹이가 보이는 대로 걷다 보니 김천 수도산이란 곳에 이르렀다. 우리의 일반적인 서식고도(1000m·수도산 해발고도는 1317m)에도 맞고 먹이도 풍부해 한동안 머무를 참이었다.

그런데 인간들은 나를 계속 잡아다가 지리산국립공원에 도로 데려다 놓았다. 지리산이 살기에 나쁘진 않지만 다시 풀어준다면 아마도 난 다시 수도산에 갈 것이다. 현재 지리산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 나의 동족 수가 47마리라는데 이곳에서 서식할 수 있는 반달가슴곰의 최대 개체 수가 딱 47마리라는 분석이 있다고 한다. 인간이 파악하지 못한 곰까지 감안하면 이미 지리산은 포화상태일 수 있다. 나같이 외부로 모험을 떠나는 반달가슴곰들이 앞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인간과 더 자주 마주칠 것이다. 내가 수도산에서 포획된 것 역시 그곳에서 일하는 인부들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우리를 봤다는 인간들의 신고건수가 지난해는 8건, 올해는 8월까지 4건이었단다. 2016년 우리에게 달아 놓은 위치추적기로 발신지 분포도를 만들었는데, 인간들의 등산로와 겹치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우리와 인간이 맞닥뜨려도 사고가 일어날 일은 없다. 나 같은 반달가슴곰은 주로 채식을 한다. 신갈나무에서 나는 도토리를 제일 좋아하고 그밖에 조릿대나 취나물, 견과류를 먹는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인간을 덮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사고가 안 난다는 보장은 없다. 이미 11년 전 자연방사 초기 우리 동족 중 한 선배가 등산 중인 탐방객의 배낭을 뒤에서 건드렸다가 돌아본 탐방객이 식겁한 일이 있었다. 만약 당황한 탐방객이 위협을 가했다면 그 선배도 공격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를 복원·방사한 인간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산에서 우리를 몰아내든가, 아니면 인간이 나가든가.

○ 인간과 곰, 공존할 수 있을까

실제 인간들도 산에서 좀 나가줘야 한다. 10년 전 국립공원 입장료를 없애면서 2006년 2678만6258명이던 탐방객 수가 2013년 이후 4500만 명으로 껑충 뛰었단다. 공교롭게도 우리 복원사업이 시작된 게 2006년이다. 탐방객 수와 우리 곰 개체 수가 같이 늘어난 것이다.

이미 지리산국립공원은 51개 공식 탐방로로 인해 야생생물 서식지가 55개로 나뉜 상태다. 거기에 등산객이 늘면서 샛길(비법정 탐방로)까지 늘어 우리들의 서식지는 더욱 조각났고 자연훼손도 심각하다. 곰들에게만 뭐랄 게 아니라 ‘등산객 다이어트’도 병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부 인간은 탐방로를 몇 년간 폐쇄하는 ‘자연휴식년제’와 탐방 인원을 제한하는 ‘탐방예약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등산객을 줄이고 우리가 위험하지 않다고 홍보한들 애초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땅덩어리가 넓은 것도 아닌 한국에서 계속 늘어날 곰들을 얼마나 더 수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오늘(17일) 나의 거취를 정하고 내 동족을 계속 자연방사할지 논의하는 인간들의 토론회가 열린다는데 과연 어떤 해법이 오갈지 궁금하다. 우리가 나가거나 인간이 나가는 방법 외에 함께 장기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 머리 아픈데 도토리나 먹고 한숨 자야겠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반달가슴곰#사드#km-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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