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 발전 2분 중단에 블랙아웃…대만 성급한 탈원전 부메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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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 대만 타이베이시의 한 상점 안에서 시민들이 매장 내 유일하게 켜진 형광등에 의존해 물건을 사고 있다. 사진 출처 대만중앙통신
15일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 대만 타이베이시의 한 상점 안에서 시민들이 매장 내 유일하게 켜진 형광등에 의존해 물건을 사고 있다. 사진 출처 대만중앙통신
대만 전역을 뒤흔든 15일 대정전(블랙아웃) 여파로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이 추진 중인 탈(脫)원전 정책을 흔들어놓았다. 태풍의 영향과 원자력발전소 가동 중단으로 전력 수급 불안이 고조된 상황에서 대정전마저 발생하자 대만 내부에선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 원인이 1차적으로는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로의 연료 공급 이상에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원전 가동 중단과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등 성급한 탈원전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대만전력공사에 따르면 대만은 이달 들어 단 한 차례도 피크타임 기준 설비 예비율이 두 자릿수(10% 이상)를 넘은 적이 없다. 사실상 정전 상태인 1%대 예비율을 기록한 날도 이틀이나 된다.

당초 대만 정부가 세운 목표 예비율은 15%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원전 6기 중 5기를 멈춰 세우고, 공정 98%에 이른 1300MW(메가와트)급 룽먼 원전 1, 2호기 공사를 중단하며 예비율 15% 방어를 사실상 포기한 상태. 현재 가동이 중단된 원전 3기와 룽먼 원전만 정상 가동되면 이 예비율은 쉽게 맞출 수 있었다. 대만에서 “대정전은 사실상 정부가 야기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대만을 ‘탈원전 모범 사례’로 지목해왔다. 하지만 탈원전 추진 과정에서 대정전이 발생하자 한국도 같은 사고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만전력공사에 따르면 대만의 발전 설비용량 기준으로 LNG가 35%를 차지하며 석탄(29%), 원자력(12%), 신재생에너지(4%)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은 원전 용량만 21%로 대만보다 클 뿐이고 LNG(35%), 석탄(33%), 신재생에너지(8%)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만과 비슷하다. 대만의 발전 설비용량은 한국의 45% 수준이다.

두 나라 모두 반도체와 정보기술(IT) 업종을 주력으로 삼고 있으며, 다른 나라와 전력망이 연결되지 않아 국내에서 전기를 모두 생산해야 하는 이른바 ‘전력 섬’이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원의 거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이런 점들 때문에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대만도 하는데 한국도 탈원전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쳐 왔다.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운 차이 총통은 2025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 중단을 법제화했지만, 올해 들어 전력난에 시달리자 원전 2기를 연이어 가동했다. 하지만 대정전까지 발생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 때문에 “대만을 탈원전 모범 사례가 아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충분한 전력 설비 예비율을 기반으로 한 전력 수급의 안정성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TSMC로 대표되는 반도체 제조사와 IT 공장을 보유한 대만은 전력 수급 불안에 기업들의 불만이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는 최근 공개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적정 설비 예비율을 6, 7차 때의 22%에서 20∼22%로 낮춰 잡았다. 대만의 목표 예비율(15%)보다도 높지만 이런 식으로 전력 공급량이 계속 줄어들면 대만처럼 작은 사고가 대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탈원전을 둘러싼 사회 갈등 심화 가능성도 문제다. 탈원전 정책이 대만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가운데 대정전이 터지자 대만에서는 국론 분열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대만 정부의 국민참여 공공정책 사이트에는 원전 재가동 제안에 찬성하는 서명자가 5200명을 돌파했다. 공공정책 사이트에 올라온 제안에 서명자가 5000명이 넘을 경우 정부 안건으로 공식 발의되기 때문에 대만 정부는 2개월 안에 이 제안에 대해 회답해야 한다.

세종=이건혁 기자 gun@donga.com
#대만#블랙아웃#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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