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양종구]“이런 게 바로 체육계 적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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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과거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체육계도 없애야 할 적폐가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최순실 국정 농단’에 연루돼 구속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만든 한국스포츠개발원(이하 개발원)이다. 개발원은 김 전 차관이 자신의 전공인 스포츠산업을 키우기 위해 2014년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이하 연구원)을 개명한 조직이다. 당초 김 전 차관은 관련 단체를 따로 만들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자 엉뚱하게도 연구원을 개발원으로 바꿨다.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선 스포츠과학연구원이 사실상 국책 연구원으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엘리트 스포츠의 경기력 향상은 물론이고 국민의 체력 증진 방안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한다. 개발원으로 바뀐 뒤 스포츠산업을 강화하는 바람에 다른 연구 기능이 축소됐다. 게다가 스포츠산업의 연구인력도 기업이나 개인의 아이디어를 공모하거나 제안을 받아 예산을 배정하는 등 행정에만 매달리는 바람에 정작 본연의 업무인 연구는 하지 못했다. 연구원 때는 스포츠과학과 정책, 스포츠산업, 인재 육성 등을 전반적으로 연구했다.

1980년 탄생한 연구원은 엘리트 스포츠와 국민 체력 증진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연구원은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금메달의 산실 역할을 해왔다. 다양한 스포츠과학 프로그램으로 선수들의 경기력을 극대화해 세계 속의 ‘강철’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성공 사례도 많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에 머문 ‘역도 영웅’ 장미란은 자세를 바꿔 힘을 제대로 쓰도록 만든 운동역학의 도움을 받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들어 올렸다. ‘사격 황제’ 진종오도 정신력이 흔들려 아테네에서 은메달에 그친 한을 마음을 다스리는 스포츠심리학에 기대어 베이징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했다. 진종오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넘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까지 권총 50m에서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마린보이’ 박태환은 주기적으로 운동량에 강약을 주어 특정 시기(대회 날)에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운동생리학적 프로그램 덕택에 베이징에서 한국 수영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연구원은 창립 당시부터 각종 스포츠과학적 지식을 일반 국민들에게 전수했다. 에어로빅, 스트레칭, 워밍업, 체지방률 등 요즘은 당연한 스포츠과학적 지식의 원천지가 사실상 연구원이었다. 주먹구구가 만연한 엘리트 선수 훈련 프로그램과 국민들의 건강관리법에 ‘과학’이란 옷을 입혀준 게 연구원이었다. 연구원은 1994년 국민체력센터를 개관하는 등 각종 국민 체력 증진 프로그램도 실시해왔다.

연구원의 명칭 복원도 시급하지만 독립성 확보도 중요하다. 1989년 재단법인으로 독립성을 강화했던 연구원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후 재정난 때문에 1999년 국민체육진흥공단 소속으로 편입됐다. 재정적으로는 안정됐지만 상위 조직인 공단의 정책 방향에 따라 독자적인 연구 활동에서는 제한을 받아왔다. 결국 김 전 차관 ‘농단’의 희생양이 됐다. 이젠 선수촌이 서울 태릉에서 충북 진천으로 옮겨가면서 연구원의 스포츠과학 기능을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의과학실로 편입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스포츠는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연구원은 국민 전체의 건강 증진을 통해 국가의 건전한 발전을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정 조직의 이익을 위해 연구원을 희생해선 안 된다. 38년째 대한민국의 ‘건강’을 선도해온 연구원이 한갓 대표팀 지원만 하게 하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연구원의 확실한 독립이 필요하다.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
#체육계 적폐#한국스포츠개발원#최순실 국정 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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