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억세게 운좋은 ‘폐이식 수술’ 50대 환자 살린 3번의 행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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區, 1억 수술비 지원 요청… 시립병원, 첫 폐이식팀 구성… 기증자, 4일만에 찾아내

서울시 보라매병원 폐이식팀이 고난도 폐 이식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퇴원을 준비 중인 김상훈 씨의 손을 잡고 축하하고 있다. 
왼쪽부터 마취통증의학과 이정만 교수, 중환자진료부 호흡기내과 박주희 교수, 김 씨, 흉부외과 황유화 교수.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서울시 보라매병원 폐이식팀이 고난도 폐 이식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퇴원을 준비 중인 김상훈 씨의 손을 잡고 축하하고 있다. 왼쪽부터 마취통증의학과 이정만 교수, 중환자진료부 호흡기내과 박주희 교수, 김 씨, 흉부외과 황유화 교수.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대한민국에서 지금 이 남자보다 더 ‘행복한 환자’가 있을까. 주인공은 김상훈 씨(53). 고난도의 폐 이식 수술을 받기까지 그에겐 뜻하지 않은 행운이 연이어 찾아왔다. 의료지원 대상자로 선정돼 1억 원가량의 수술비를 지원받게 됐고, 국내 시립병원 사상 처음으로 폐이식팀이 구성됐다. 여기에 4일 만에 나타난 폐 기증자까지…. 죽음을 앞둔 그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27일 서울시 보라매병원 입원실에서 만난 김 씨는 “빨리 회복해 위암과 대장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 곁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이달 8일 13시간 동안 폐 이식 수술을 받은 그의 걱정은 오로지 어머니 건강이었다. 그는 다음 주에 퇴원할 예정이다.

일용직 근로자로 그날그날 생활비를 마련해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김 씨는 3년 전 호흡이 힘들어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특발성 폐섬유화증’. 원인을 모른 채 폐가 딱딱하게 굳는 병이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질환이다. 휴대용 산소 호흡기가 없으면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다.

올해 들어 폐 기능이 갑자기 악화된 김 씨는 담당 의사로부터 폐 이식 수술을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수술비용만 1억 원 가까이 들어 김 씨로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차라리 죽음을 기다리고 말겠다는 체념을 하고 있을 때 첫 번째 행운이 찾아왔다. 김 씨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게 된 보라매병원 공공의료사업단과 동작구보건소의 도움으로 ‘구(區) 안전망 강화 사업’ 취약계층 의료지원 대상자로 선정돼 1억 원에 가까운 수술비 전액을 지원받게 됐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동작구에는 폐 이식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그런데 두 번째 행운이 찾아왔다. 서울대병원에서 폐 이식을 전공한 흉부외과 황유화 교수(37·여)가 3월 보라매병원으로 옮기면서다. 병원은 김 씨를 수술하기 위해 황 교수를 중심으로 호흡기내과와 흉부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중환자 진료팀 등으로 폐이식팀을 꾸렸다. 국내 시립병원으로서는 첫 시도였다. 지난달 26일 보라매병원은 보건복지부로부터 폐 이식 가능 병원 승인을 받아 냈다. 일사천리처럼 일이 진행됐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폐 기증자를 찾는 일이었다. 이 와중에 김 씨의 상태는 이달 4일 급속히 악화됐다. 김 씨는 인공심폐기(에크모)에 의지해야 했다. 병원에선 폐 기증자가 나타나기만을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의료진은 기증자를 찾기까지 최소 한 달가량을 예상했다. 김 씨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때 믿을 수 없는 세 번째 행운이 찾아왔다. 김 씨가 인공심폐기를 단 지 불과 4일 만에 폐 기증자가 나타났다.

김 씨에게 찾아온 놀라운 행운이 결코 우연만은 아니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체계와 한 단계 높아진 공공의료 서비스 같은 사회적 시스템이 장기기증 문화의 확산과 맞물려 이뤄낸 의미 있는 결과이다.

황 교수는 “장기 이식 수술에서 가장 어려운 부위가 폐”라며 “폐 기증자가 나타나도 실제 폐를 이식할 수 있는 확률은 15∼20%에 불과하다. 김 씨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수술을 받게 돼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제 김 씨는 호흡재활 치료와 면역억제제 복용 등 통원 치료를 받으면 된다. 김 씨는 “폐 이식을 받고 무사히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준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꾸준히 운동하고 건강관리에 유념해 다시 찾은 행복을 잘 지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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