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배꼽티 유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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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장마철이면 죽마고우를 불러내 포장마차를 찾는 친구가 있습니다. 추적추적 비 듣는 소리에 소주 한잔 걸치며 개똥철학, 또는 그 친구 말대로 ‘서민의 철학’ 하길 좋아하지요. 이럴 때면 품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이렇게 절친 사이에 소주잔을 들며 나눈 대화입니다.

“자네 배꼽티 어떻게 생각하나?” “생뚱맞게 웬 배꼽티, 날도 더운데 자네도 시원하게 배꼽티 입어 볼 텐가?” “그게 아니고.” 친구 얼굴이 약간 심각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애가 요즘 배꼽티 입고 다니는데, 신경이 좀 쓰여. 다 큰 딸에게 대놓고 그러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딸 자랑 많던 친구에게 고민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도 고민하는 티는 내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뭐 심각한 건 아니고, 가볍게 한번 대답해 봐! 여자들은 왜 배꼽티를 입을까?” “더우니까.” “뭐?! 이 사람아, 좀 진지하게 답해 봐!”

“진지하게 답하고 있다고. 일상을 잘 관찰해 봐! 남자는 더우면 웃통을 벗는다고. ‘웃통 벗다’라는 말도 있잖아. 이 말이 여자에겐 액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거지. 여자는 가슴을 가려야 하니까, 여성의 입장에서 웃통을 벗으려면 배꼽티가 해결책 아니겠어?” “음, 그럴듯한 궤변인데….”

“웃자고 한 소리야. 그건 그렇고 자네가 진지하게 답하라고 해서 하는 말인데, 미학적 이유가 있는 것 같아. 예술사에서 서양 중세 미학의 특징을 ‘빛과 색채’라고 하지. 특히 황금빛과 밝은 원색을 이용한 장식 문화가 발달했지. 중세 사람들은 라틴어로 데쿠스(decus), 곧 장식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았어. 장식의 이론을 설파하기도 했지. 6세기의 유명한 성인 세비야의 이시도르는 ‘어원론 또는 사물의 기원’이라는 저서에서 인공적인 장식 외에 자연적인 장식에 대해서도 논했지. 실용적인 기능은 없지만 보기에 좋은 곧 미적 쾌감을 주는 것을 장식이라고 정의한다면, 인체에 순전히 장식을 위한 기관이 있다는 거지. 기능적인 면에선 없어도 되지만 미적 효과를 주니까 흥미로운 거지. 뭐가 있을까?”

“맹장!” “이 친구야, 맹장은 눈에 안 보이잖아.”

“눈썹?” “음…, 눈썹 나름이지. 속눈썹은 엄청난 실용적 기능이 있어. 장식화할 수도 있지만. 속눈썹 없으면 온갖 이물질이 눈에 들어가잖아. 윗눈썹은 기능보다 장식적인 측면이 더 클 거야. 그래서 한때는 역설적으로 윗눈썹을 모두 밀어버리는 화장술이 유행이었고, 지금은 오히려 진하게 칠하는 화장술이 유행이지.”

“아, 수염!” “빙고! 특히 자네의 그 콧수염은 전적으로 장식미를 내기 위한 거지. 그런데 세비야의 이시도르는 남녀 모두에게 있는 아주 중요한 ‘인체의 데쿠스’를 지적했어. 바로 배꼽이야. 배꼽은 엄마 배 속에 있을 땐 엄청나게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그 후론 아무 기능 없이 시선을 끄는 장식이 되는 거지. 덧붙여 이시도르는 남성에겐 젖꼭지가 실용적 기능 없는 데쿠스라고 했거든. 하지만 여성에겐 전혀 그렇지 않지. 특별히 보호해야 할 기관이기도 하고. 그래서 여성에겐 배꼽이 데쿠스로서 더욱 소중하고 그것을 미적으로 활용하려는 욕구가 더욱 크다고 해석할 수 있지.”

“그래서 결론이 뭔가?”

“결론은 무슨 결론, 세상을 보는 하나의 관점이지. 아직도 학생 때처럼 결론과 정답에 집착하나? 그저 이 장마철의 개똥철학을 계기 삼아 자식 땜에 ‘고민하는 아빠’에서 잠시나마 우리 모두의 삶을 위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보자는 거지 뭐. 더위도 좀 잊고.”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배꼽티#데쿠스#de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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