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안세영]노인복지 새로 만들때 1971년생에 물어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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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별 가장 많아… 노인부양 짐 진 46세
열심히 세금 내서 어르신 모시지만
30년뒤 자신들은 지금같은 혜택 없어
그들이 “NO”하면 후손에 떠넘기는 복지제도 재고해야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런던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출근 시간이 지난 오전 10시쯤이면 집에서 나와 지하철을 탄다고 한다.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오후 4시가 넘으면 거리에서 슬며시 사라진다.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도쿄 지하철은 65세 이상은 무료였다. 그리고 노인들이 타면 젊은이들이 흔쾌히 자리를 양보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노인들 스스로도 양보받을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물론 65세 이상 무임승차 제도도 바뀌고 말이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사회에 들어간 선진국에서 벌어진 세태 변화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직장인, 학생들과 어르신들이 뒤섞여 지하철을 타고, 춘천 닭갈비를 먹으러 가는 세대와 출근하는 세대 사이에선 가끔 묘한 해프닝이 기차에서 벌어지곤 한다.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를 향해 뜀박질하고 있다. 인구 중에서 65세 이상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프랑스는 1874년 고령화사회에서 시작해 1979년 고령사회로 들어가는 데 100년 이상 걸렸고 미국은 73년, 일본은 24년 걸렸다. 그런데 우리는 단 18년 만에 해치웠다.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면서 그간 지역 갈등, 이념 갈등, 양극화 갈등을 경험했다면 앞으로 겪을 새로운 갈등은 세대 간 갈등이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노인 부양비용 부담과 혜택을 둘러싼 세대 간 불균형 때문이다. 지금의 고령화를 그대로 방치하면 한국은 40년 후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 이렇게 되면 정부 예산 중 사회복지(의료 연금 복지) 비용 부담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일본의 경우 2000년 35%에 불과하던 이 부담이 2016년 55%로 폭등했다. 우리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 예산 비중이 현재의 10% 수준에서 2050년에는 27%로 세 배 가까이로 급증한다. 지금은 전체 인구의 14%를 차지하는 65세 이상이 전체 의료비의 38%인 약 19조 원을 쓰는데 2050년이 되면 무려 390조 원을 쓰게 된다.

당장은 15∼64세 경제활동인구 7.8명이 한 명의 어르신을 모시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할 경제활동인구가 턱없이 줄어들어 2060년이 되면 65세 인구비중이 무려 37%로 100명이 일해서 70여 명의 노인을 모셔야 한다.

‘1971년생의 애환’이란 말이 있다. 연령별로 71년생이 제일 많은데 46세가 된 이들은 열심히 세금을 내서 어르신을 잘 모시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이 70, 80대가 되는 30년 후에는 오늘날과 같은 복지 혜택을 못 받는 가련한 처지가 된다. 말하자면 부담만 있고 미래의 혜택은 없는 세대 간 불평등인 셈이다.

이 같은 세대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세대 간의 따뜻한 배려이다. 주위 친구들은 내년이면 당당히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마구 돌아다닐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이는 65세 이상의 ‘권리’가 아니다. 돈을 내고 타는 젊은 세대의 ‘배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300원짜리 지하철을 한 명이 무임승차하면 약 6명이 250원 정도를 나눠 부담해주는 것이다.

이런 배려의 마음을 가질 때 번잡한 출퇴근 시간을 피해 지하철을 타는 런던 노인들의 지혜를 배우고, 어린애를 안고 쩔쩔매는 젊은 엄마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멋진 어르신이 나올 것이다. 일본만 해도 선진국, 복지사회에 들어가고 난 후 고령사회에 들어갔다. 하지만 우리는 만년 중진국의 늪에서 헤매면서 복지사회와 고령사회라는 두 가지 난제를 풀어야 하기에, 자칫 잘못하면 10∼20년 하다가 재정파탄으로 중단될 노인복지 제도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지금부터라도 그럴싸한 공공노인복지 제도를 만들 때 ‘당장 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1971년생인 46세가 76세가 돼도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를 다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대답이 ‘노(no)’라면 재고해야 한다. 고령사회의 어려움을 현재 세대가 나눠 분담해야지, 오늘 당장 편하자고 마구 쓰고 그 부담을 후손에게 떠넘겨선 안 되기 때문이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노인복지#지하철 무임승차#초고령사회#노인 부양비용#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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