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상견례 대신 ‘노사정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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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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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이르면 26일 기업인 靑초청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이르면 26일 대기업 전문 경영인 등을 초청해 취임 후 처음 재계와 공식 상견례를 한다. 재벌 총수보다 전문 경영인 위주로 초청하면서 해당 회사 노조위원장, 사원 대표를 함께 만나는 파격적인 자리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청와대와 재계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재계 대표들의 만남은 당초 8월 중순으로 추진됐지만 법인세 인상,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등 경제 현안이 급부상하면서 다소 당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회동 날짜, 기업의 수와 구체적인 대상은 아직 조율 중이지만 10∼20개 기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당초 예전처럼 대기업 총수들과의 회동을 제안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생각은 달랐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청와대와의 조율을 거치며 총수에서 전문 경영인 참석 위주로 가닥이 잡혔다”고 말했다. 특히 사원 대표와 노조위원장까지 한자리에 부르는 방안은 청와대가 재계에 ‘역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과 기업 간 첫 회동에 노조위원장 및 일반 사원이 참석한 전례는 없다. 재계는 청와대가 정경유착 등 국정 농단 사태를 빚은 박근혜 정권과 차별화하기 위해 ‘노사정 대담’ 형식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5개월 만인 2003년 6월 1일에야 청와대가 아닌 근처의 한 삼계탕집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을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기간 재벌과 대기업을 ‘기득권’으로 지칭하며 적대적인 시각을 보인 만큼 대통령이 된 후 총수들을 아예 만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았다. 이런 냉랭한 분위기를 신발을 벗고 앉아 식사하는 삼계탕집 회동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날 회담을 계기로 재계와의 해빙 무드가 이어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6월 1일 ‘삼계탕 회동’의 방식으로 재계 총수들을 만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07년 12월 28일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찾아 총수들 앞에서 “기업 프렌들리”를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총수들이 아닌 전문경영인을, 특히 노조위원장이나 사원대표들과 함께 만나 또 다른 장면을 연출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DB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경제민주화’를 선언하며 대기업과 거리를 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예상과 달리 당선 7일 만인 2012년 12월 26일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찾아 총수들을 만났다. 하지만 같은 날 오전 중소기업인들을 먼저 찾았다. 중소기업중앙회를 먼저 방문한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웠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총수들과의 만남에 주저함이 없었다. 당선 9일 뒤 전경련을 첫 경제계 방문지로 택했다. 국립서울현충원 참배를 제외하면 첫 공식 일정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기업인들의 건의를 들으러 왔다”며 총수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먼저 청하며 친근감을 표했다. 도시락 식사를 하며 진행된 간담회는 시종 밝고 화기애애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동에서 ‘사람 중심 경제와 국민 성장’이라는 새 정부 경제철학을 강조하고, 신성장동력 확보, 민간 일자리 창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등 현안에 대한 재계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의례적인 만남이 아닌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지는 자리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A그룹 관계자는 “재벌 총수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보여 주기식 행사보다는 실제 회사를 운영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전문 경영인들과 구체적인 안건을 논의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전문 경영인들은 이번 만남에서 협력업체들과 상생 경영을 하는 한편,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약속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규제개혁과 더불어 중국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해결 및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위원장들은 성과연봉제 폐지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은택 nabi@donga.com·유근형 기자
#문재인 대통령#노사정#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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