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컴퓨터로 성산산성 목간 연대 최초 확인…고대사 해석 바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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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산성 축성 의도, 아라가야 멸망시기 통설 흔들려

첨단 컴퓨터 기술을 활용해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목간(木簡·글자를 기록한 나무막대기)에서 연대(간지)를 최초로 확인했다. 이에 따라 6세기 신라가 대가야를 공략하기 위한 교두보로 성산산성을 쌓았다는 학계의 기존 통설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10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일본 나라(奈良)문화재연구소 와타나베 아키히로 부소장이 올 3월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를 방문해 ‘모지조(MOJIZO)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목간 판독을 실시했다. 판독 결과 ‘王子寧(왕자녕)’으로 해석된 21번 목간 글자가 사실은 ‘壬子年(임자년)’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라문화재연구소와 도쿄(東京)대 사료편찬소가 지난해 공동 개발한 모지조는 일본의 고대 목간 화상 3만 건을 모은 데이터베이스(DB)를 바탕으로 목간 글씨를 판독하는 소프트웨어다. 목간 이미지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아이폰)으로 업로드 하면 이를 정자체로 풀어서 보여준다. 약 40만 점에 달하는 출토 목간을 보유한 일본학계에서 모지조의 신뢰성은 높은 편이다. 앞서 올 초 일부 학자들이 해당 목간을 ‘왕자녕’으로 판독한 결과가 공개된 이후 권인한 성균관대 교수(국문학)와 서체 연구자인 손환일 대전대 서화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중심으로 반론이 제기됐다. 필획이나 앞뒤 문맥을 고려할 때 ‘임자년’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었다. 지금껏 성산산성에서 1991년부터 17차례에 걸쳐 발굴이 이뤄져 국내 출토 목간의 절반에 육박하는 총 308점의 목간이 발견됐으나, 연대가 확인된 건 처음이다.

목간 연구자인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전후 문맥을 봐도 ‘왕자녕’은 오독(誤讀)이 분명하며 ‘임자년’이 99% 맞다”고 말했다. 일본 목간 연구 권위자로 해당 목간을 관찰한 와타나베 부소장도 “‘임자년’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중국 쪽 목간 연구자도 같은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임자년 목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산산성에서 함께 출토된 토기 양식을 감안할 때 임자년 간지의 연대는 532년, 592년, 652년 중 하나에 해당된다. 주목할 점은 해당 목간이 성을 쌓기 전 나뭇가지 등 폐기물로 땅을 다지는 부엽층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목간 연대가 성산산성의 축조 시점을 알려주는 중요한 열쇠인 셈이다.

학계는 삼국시대 당시 정황을 감안하면 임자년은 532년 혹은 592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만약 592년으로 본다면 대가야는 이미 562년에 멸망했으므로 성산산성 축성 의도는 백제나 왜(倭)를 겨냥한 걸로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6세기 말∼7세기 초 백제는 왜와 손잡고 신라에 맞서는 형국이었다. 백제 무왕이 602년 왜와 동맹을 맺고 전북 남원 일대의 신라 영토를 공격한 ‘아막성 전투’가 대표적인 예다.

임자년을 532년으로 봐도 새로운 역사해석이 가능하다. 함안은 신라가 점령하기 직전까지 아라가야의 영토였는데, 학계는 아라가야가 550년 무렵까지 존속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성산산성이 신라에 의해 532년에 세워졌다면 아라가야 멸망 시점은 통설보다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이주헌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성산산성에서 7세기 전반 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걸 보면 임자년 목간은 592년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며 “성산산성의 역사적 성격을 새롭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성산산성 21번 목간#글씨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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