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폭탄, 멀쩡한 흑자기업도 폐업 궁지로 몰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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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중견기업 반응

중소·중견기업계는 높은 상속세가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줄곧 지적해 왔다. 한국에서 30년 넘는 장수기업이 나오기 힘든 것도 ‘상속세 폭탄’이 주원인이라는 것이다.

창업자인 아버지 밑에서 11년째 근무하고 있는 제조 중견기업 2세 경영인 A 씨. 현행 기준대로라면 연 매출액이 3000억 원 미만이어서 이 기업은 가업상속공제 대상에 해당된다. 하지만 매출액 기준을 낮추거나 공제액을 축소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전해지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A 씨는 “현재 아버지 지분을 놓고 따져봤을 때 경영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내야 할 상속세가 100억 원 정도다. 이 돈을 어디서 마련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A 씨는 “‘이걸 내느니 차라리 회사를 팔고 다른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한숨을 쉬었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가 회사나 부(富)를 대물림한다는 시각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한 우물을 판 장수기업들이 실제로 가업 승계 과정에서 상속세 부담 때문에 흔들리거나 폐업하는 일까지 벌어진다는 것이다. 지분을 팔아 상속세를 내느라 경영권을 잃기도 한다. 세계 1위 손톱깎이 제조사인 쓰리세븐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8년 창업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유족들이 과도한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회사 지분을 처분해 경영권을 빼앗겼다.

대를 이어 중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B 대표도 6년 전 가업 승계를 할 때 억대의 상속세를 떠안으며 회사가 한참 휘청거렸다고 말했다. B 대표는 “세금 때문에 분기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돈 구하러 다녔다. 나 아니면 회사를 맡겠다는 사람도 없는데 어쩌겠나. 처음엔 사명감을 갖고 가업을 잇자는 생각이었지만 국가가 멀쩡한 흑자 기업을 폐업시키도록 궁지로 모는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중소·중견기업들은 가업상속공제로 상속세를 감면받는다고 해도 그 후 10년 동안 엄격한 사후관리를 받아야 하는 것도 불만이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으면 경영권을 물려받을 당시 기준으로 10년간 동일 업종을 유지해야 하고 정규직의 80% 이상 고용 유지 등의 사항을 지켜야 한다. 어기면 감면 금액을 토해내야 한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종업원 100명을 둔 기업이 몇 년 뒤 매출이 줄어서 79명으로 줄면 추징이 들어간다. 10년간 현실과 안 맞는 족쇄를 차게 되는데 누가 섣불리 가업 승계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황명욱 중기중앙회 가업승계지원센터 선임은 “사후관리 기간을 10년에서 독일 기준인 7년 정도로 줄이고, 근로자 인원 수 유지 조항 대신에 임금 총액을 기준으로 바꾸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일부 중소·중견기업들은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행태를 고스란히 따라 하고 있다. 창업주 생전에 자녀 명의로 관계회사를 만들어 독점적으로 일감을 몰아주고 창업주의 지분을 조금씩 사들이게 하는 식의 편법이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상속세#중소기업#가업상속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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