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재계에 각세운 문재인 정부… 기업들 “출구 안보여 갑갑”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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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비정규직 해소 드라이브]정규직 기득권-간접고용 문제 등 민간영역선 단순해결 어려운데 비정규직 정규직전환 밀어붙여 신규채용 감소로 이어질수도
정부 수위높은 비판에 재계 당혹 “무서워서 무슨 말 할수 있겠나”
전문가 “시각차 줄일 대화 필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0일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정부와 재계의 갈등을 촉발할 ‘뇌관’이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26일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의 발언을 직접 반박한 데 이어 28일에는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재벌 비판에 가세했다. 재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지만 자칫 정부와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비칠까 경계하는 모습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각 이해관계자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는 만큼 핵심 쟁점에 대한 신중하고 진지한 논의가 서둘러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로의 진영에서 함포 사격만 하다 보면 합의점을 찾아내기보다는 오해의 골이 더 깊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 “귀족노조·간접고용 등 문제 단순치 않아”

민간 기업들의 비정규직 문제는 단칼에 정리하기 쉽지 않은 복잡한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기득권 문제다. 재계에서는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일부 강성 노조가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을 급격히 높였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저성과자 해고가 불가능할 정도로 정규직 노동시장이 경직됐다는 지적도 있다. 과도한 인건비를 부담하고 인력 운용의 여유를 잃게 된 기업들이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채용으로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경총의 김 부회장이 “대기업 정규직의 과도한 임금 인상이 지속된다면 기업 규모,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한 게 이런 배경에서다. 물론 기업들이 이런 사정을 악용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정규직들과의 싸움을 피하고 기업의 이윤만 좇으면서 ‘나쁜 일자리’를 양산했다는 비판이다.

대기업의 간접고용 이슈도 ‘뜨거운 감자’다. 제조업만 보면 평균적으로 한 기업에서 일하는 100명의 임직원 중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각각 96명, 4명이다. 여기에 사내하도급 등의 형태로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간접 고용 인원’이 33명쯤 된다. 경영계에서는 비주력 업무를 전문 업체에 맡기는 ‘아웃소싱’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인건비를 줄이고 인력을 쉽게 감원할 수 있는 편법 또는 불법적 고용형태라고 보고 있다.

간접고용의 경우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근로자들 간 ‘노노 갈등’의 원인도 되고 있다. 지난달 말 전국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가 비정규직 사내하청 근로자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기로 의결한 게 대표적이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최우선 정책 과제로 내걸고 있는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동시에 추진하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기업이 안게 되는 비용 부담은 결국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좋은 일자리’와 ‘많은 일자리’ 중 어떤 곳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시점인지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결국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의 문제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고민하면서 생산적인 대화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소통’ 외쳐놓고 비판 계속하자 당혹스러운 재계

재계에서는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의 수위 높은 비판에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지금은 무서워서 무슨 말을 할 수나 있겠나”라고 했다. 5대 그룹 한 관계자는 “노동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는 아무것도 없는데 무조건 정규직만 늘릴 수는 없다. 어디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지 출구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군기만 잡는 상황이라 갑갑하다”고 말했다.

재계는 특히 문 대통령이 누구보다 소통을 중요시해 왔다는 점에서 불만이 더 크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달 1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초청한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비정규직 전환 문제는 정부의 일방적인 조치가 아니라, 사회적인 대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집권하면 대한상의를 비롯한 경제계와 노동계, 일반 시민사회, 이렇게 폭넓게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해 내겠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겠다던 문 대통령이 경제단체의 발언에 즉각 ‘면박’을 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본인 생각과 다르면 완전히 적폐 대상이라는 것 아니냐. 다른 목소리에 대해 이렇게 몰아붙이면 기업 입장에서는 공포와 패닉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을 설치한 뒤 개별 기업별로 일자리와 비정규직 추이를 살펴보겠다고 했다. 재계에서는 이를 ‘민간 기업 압박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정부는 “심각한 오독”이라고 하는 시각차도 서둘러 극복해야 할 간극으로 보인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귀족노조 기득권 얘기는 안 하면서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의 말만 하고 있다”며 “근본 원인이 뭔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건지 등을 놓고 재계, 노동계와 함께 허심탄회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형 dodo@donga.com·이샘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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