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한번 못쓴 ‘인간계 최강’ 커제… 더 세진 알파고, 빈틈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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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제 vs 알파고]알파고 289수 만에 1집반 승

‘이변은 없었다.’

구글 딥마인드사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 인간 최고수 바둑 기사의 대결에서 알파고가 다시 승리를 거뒀다. 23일 중국 저장(浙江) 성 자싱(嘉興) 시 우(烏) 진 세계인터넷회의중심에서 세계 랭킹 1위 중국 커제(柯潔) 9단과 가진 3번기 첫 대국에서 알파고는 백을 쥐고 289수 만에 1집 반 승을 거뒀다. 대국은 이날 오전 10시 반 시작돼 4시간 25분 만인 오후 2시 55분 끝났다.

○ 조금의 빈틈도 안 보인 알파고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4-1로 이긴 후 더욱 실력이 향상된 알파고는 초반부터 새로운 수를 잇달아 내놓으며 줄곧 대국을 주도했다. 커 9단은 눈에 띄는 실수를 하지 않았지만 알파고의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날 행사는 알파고와 커 9단이 회의중심 2층 소회의실 ‘징싱팅(景行廳)’에서 대국을 진행하고 국내외 기자 및 참가자들은 1층 대회장에서 전문 기사의 해설과 함께 대국 장면을 관람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커 9단은 초반 포석 등을 비교적 빨리 두는 기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날 초반 알파고가 20분을 쓰는 동안 커 9단은 1시간 이상을 쓰며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알파고가 허를 찌르는 수를 여러 차례 내놓았기 때문이다.

대국 후반 패배가 거의 확실해지자 커 9단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두 손으로 두 귀를 감싸며 바둑판을 응시하거나 머리를 꼬는 등 긴장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이 모습은 1층 대회장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통해 기자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됐다. 해설을 맡은 화이강(華以剛) 중국바둑협회 비서장은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고 유도해 참석자들이 박수로 격려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3패를 당한 후 제4국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타가 된 ‘중앙 끼워넣기 백 78’과 같은 ‘신의 한 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김성룡 9단은 “커 9단이 특별한 실수가 없었는데도 어디서 왜 졌는지도 모르게 진 알파고의 완승국”이라며 “프로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패배”라고 이번 대국의 의미를 설명했다. 김 9단은 “커 9단은 세 곳이나 삼삼을 두며 실리를 챙긴 뒤 중앙에 생긴 세력을 지우는 등 이세돌 9단이 4국에서 알파고와 두어 이겼을 때와 비슷한 전략을 구사했으나 역부족임을 확인한 한 판”이라고 평가했다.

○ 커제, “알파고는 바둑의 하느님 같다”

초반 커 9단의 우하귀 흑 7 삼삼은 ‘알파고의 수’라고 알려진 수로 프로기사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커 9단이 꺼내들어 알파고에 대해 많은 준비를 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알파고는 이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해 놓은 듯한 수로 커 9단을 궁지로 몰았다.

이제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거둔 한 판의 승리가 ‘인류가 AI 바둑에 거둔 유일한 승리이자 최후의 승리가 될 수 있다’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행사장에서 만난 창하오(常昊) 9단은 ‘앞으로 알파고를 이길 희망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아마도…”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유창혁 한국기원 사무총장(프로 9단)은 “알파고는 감정, 기복, 실수 3가지가 없다”며 “알파고가 스스로 틈을 보이지 않으면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국이 끝난 후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등과 30여 분간 기자회견을 가진 커 9단은 시종 비교적 담담하고 밝은 표정으로 “패배 원인을 연구해 다음 대국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커 9단은 “지난해만 해도 알파고가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바둑의 ‘상제(上帝·하느님) 같다”며 “앞으로 스승으로 삼고 배울 것”이라고 말했다. 커 9단은 “알파고는 바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며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사람이 바둑을 이해하고, 바둑에서 즐거움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알파고와 인류는 공존 협력 관계’


알파고와 커 9단의 2라운드 ‘런지(人機·인간과 기계) 대전’은 바둑에서 나타난 AI의 위력이 인류 생활의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도 어렵다는 과제를 던졌다. 이제는 AI가 대결이나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과 협력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날 대국에 앞서 열린 개막식에서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은 “이번 대결을 ‘인간과 기계의 대전’이라고 표현한 것은 맞지 않다”며 “이번 대결은 결과에 관계없이 인류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슈밋 회장은 “AI 컴퓨터는 앞으로 우리가 당면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협력해 인류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국가체육총국의 뤄차오이(羅超毅) 부국장도 환영사에서 “알파고는 바둑의 새로운 세계를 열 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활과 사유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주최 측이 26일 프로기사와 알파고가 한 팀이 되어 두는 복식전을 마련한 것도 인류와 AI의 공존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싱=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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