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영]정숙 씨에게 주는 두 여사의 조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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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어느 퍼스트레이디도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유쾌한 정숙 씨’ ‘친절한 정숙 씨’ ‘소녀감성 정숙 씨’로 불린다. 2012년 여름엔 ‘어쩌면 퍼스트레이디 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를 펴냈는데, 출간 기념 콘서트에서 “남편 뒤에 다소곳하게만 있기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 부인은 청와대에서 선출되거나 임명되지 않은 유일한 존재다. 김 여사는 법적인 한계와 뒤에 서지 않겠다는 소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제외하고 역대 영부인들 가운데 청와대 시절을 기록으로 남긴 이는 두 사람이다. 이순자 여사의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와 ‘이희호 자서전 동행’에는 수습 기간도 없이 줄타기를 해야 하는 김 여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①영부인 활동은 영부인 예산 범위 안에서=이순자 여사는 새세대육영회와 새세대심장재단의 설립이 “대통령 부인이기에 가능했다”며 ‘청와대 시절의 보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두 단체는 훗날 전두환 일가의 부정축재 창구로 비난받았다. 이희호 여사도 “대통령 부인이 단체를 만들어 봉사활동을 하는 데 부정적인 시각이 많더라”고 적었다. 그가 주도했던 ‘사랑의 간식 나누기’ 행사는 아이디어만 좋으면 정부나 기업에 손 벌리지 않아도 됨을 보여준다. 그는 봉지를 뜯지 않은 기내식들이 그대로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고 항공사와 관세청, 식약처의 협조를 얻어 이를 전국의 공부방 어린이들에게 간식으로 나눠줬다.

②옷 브랜드를 공개하라=이희호 여사는 1998년 관저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진 뒤로는 치맛자락이 밟힐까 봐 두려워 한복을 입지 않았다. 그의 단골 의상실이 ‘라스포사’였다. 1999년 대기업 회장 부인이 장관 부인들에게 라스포사 옷을 사줬다는 ‘옷로비 의혹 사건’은 특검에서 무혐의로 결론이 났지만 이 여사가 이곳 단골임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정부는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이 여사가 처음부터 라스포사를 애용한다고 공개했더라면 어땠을까.

③개인의 일상도 중요하다=이순자 여사는 둘째 아들 재용 씨가 고3이 되자 남편과 번갈아 가며 공부방을 지켰다. 저녁식사 후 오후 9시까지는 전두환 전 대통령, 그 다음은 이 여사 차례였다. 청와대란 “가족의 일상이 국가의 일상에 노출된 채 일희일비하며 살아야 하는 곳”이다. 사적 일상을 챙기는 대통령은 공적 업무에만 매몰된 이보다 균형감과 친근감을 준다.

④친인척 눈빛을 감시하라=집권 이듬해인 1981년 시댁을 찾은 이순자 여사는 눈빛이 확 달라져 버린 친척들을 보고 무서웠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던 순박한 이들에게 고급 차를 탄 사람들이 접근해 “회장으로 모시겠다”며 굽실거렸다. 이후 권력형 비리 사건이 줄줄이 터졌다. 이희호 여사는 42세에 제왕절개로 낳은 막내 홍걸 씨가 ‘최규선 게이트’로, 한 달 후엔 둘째 홍업 씨가 ‘이용호 게이트’로 구속되자 무릎을 꿇었다. “주여, 저의 기도가 부족했습니까? 저희가 교만했나요?”

⑤정상엔 키 작은 나무가 자란다=백담사 시절 설악산 대청봉에 오른 이순자 여사는 놀랐다. 정상의 나무들이 모두 기어가는 듯 누워 있더란다. 그는 “나무건 사람이건 몸을 낮추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곳이 정상이다. 삶의 정상은 겸손한 자만이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곳에서 일행을 날려버릴 듯 세찬 바람을 맞고는 이렇게 탄식했다. “산의 정상은 그 누구도 오래 머물게 하지 않았다. 아아, 우리는 청와대라는 권력의 정상에서 내려오는 ‘하산의 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퍼스트레이디#문재인#김정숙#대통령 부인#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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