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신 공무원” 10대 응시 급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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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급 응시 10대, 2년새 48% 늘어


“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하는 시대는 끝난 것 같아요. 대학생 친구들이 오히려 (고졸인) 저를 부러워해요.”

최근 서울지역 9급 공무원으로 채용된 김모 주무관(여)은 2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0대다. 특성화고 출신인 그는 지난해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졸업자만 대상으로 하는 서울시 고졸자 경력채용 시험에 지원해 열아홉 나이에 공무원증을 목에 걸었다. 한때 대학생을 꿈꾸던 김 주무관이 진학을 포기한 건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이 큰 영향을 끼쳤다. 김 주무관은 “과거에는 대학 졸업장이 취직을 어느 정도 보장했지만 지금은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면서 “취업시장의 불안이 대학수학능력시험 대신 공무원시험을 택하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대학입시에서 ‘공시’로 유턴

지난해 시험에 합격해 서울시 9급 공무원이 된 박모 주무관(22)도 고교 졸업 후 바로 임용시험에 뛰어들었다. 수능까지 치렀지만 오랜 고민 끝에 대학생 대신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이 되기로 했다. 박 주무관은 1년 반가량의 수험생활 끝에 서울시 지방직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학창시절 공무원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박 주무관은 “행정 관련 학과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실무를 먼저 경험하기로 마음을 바꿨다”면서 “불안한 취업시장 탓에 공시 경쟁률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어 서두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극심한 취업난의 영향으로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 대신 공무원시험에 뛰어드는 10대들이 늘고 있다. 24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7년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지원자는 22만8368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10대(18, 19세) 지원자는 3202명으로 2015년(2160명)보다 4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고졸자 경력채용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 114명을 선발한 시험에는 1465명이 지원해 경쟁률 12.9 대 1을 기록했다. 2014년에는 5 대 1에 그쳤던 경쟁률이 불과 2년 새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 70% 벽 무너진 대학 진학률

일찍부터 공무원시험 준비에 뛰어드는 10대가 늘면서 교육 현장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 관계자는 “공무원이 되는 졸업자가 늘면서 특성화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면서 “중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입학이 늘고, 학교설명회에서 공무원 임용 관련 질문을 하는 학부모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공시 준비 학원이 밀집한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의 기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공시 전문학원 관계자는 “2, 3년 새 10대 공시생들이 노량진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며 “대학을 나와도 결국 스펙 경쟁을 벌여야 하니 아예 일찍부터 공시에 뛰어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 4년간 들어갈 각종 비용을 자기 계발이나 미래 계획에 쓸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교 졸업 후 올해 서울시 9급으로 임용된 김모 주무관(19)은 “투입 비용 대비 대학이 큰 역할을 못 하는 것 같다”면서 “대학생활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아껴 군 입대하기 전에 여행을 가거나 내가 배우고 싶은 일에 쓰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대학 진학률은 매년 하락하고 있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고교 졸업자 60만7598명 가운데 69.8%(42만3997명)가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진학률이 70% 밑으로 떨어진 건 2000년(68.0%) 이후 처음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대학 졸업자 3명 중 1명은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돈을 많이 쓰는 것에 비해 사회에 제대로 진출하는 인원은 적다 보니 더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공무원시험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또래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10대 공무원’ 생활이 마냥 흡족한 것만은 아니다. 한 고졸 출신 서울시 주무관은 “처음 해보는 사회생활이 아직 서툴고 낯설다. 특히 고졸자에 대한 선입견이 여전히 있다”면서 “주변에서 향후 승진 등을 이유로 대학에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하기도 해 솔직히 고민은 된다”고 털어놓았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공무원#응시#공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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