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컬처]남성이 열심히 하면 “능력男”… 여성이 일 잘하면 “독하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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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대 여성 직장인이 본 TV 드라마속 여직원 캐릭터
직장내 남녀평등 묘사는 비현실적 승진-대우 등 차별적 요소 여전
‘여자의 적은 여자’ 프레임 깨야 여성들끼리도 연대의식 가질 필요
여직원에게 회사는 정글이라지만 그건 남직원에게도 똑같이 해당

회사를 연애하는 장소 취급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 드라마 중에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은 작품이 많다. KBS2 ‘김과장’(위 사진)은 조직내에서 천대받는 경리부가 주 무대. MBC ‘자체발광 오피스’(오른쪽 사진)에선 서러운 일 많은 계약직 신입사원이, KBS2 ‘아버지가 이상해’에서는 오랜 백수 생활 뒤 인턴이 된 셋째딸이 주목받고 있다. KBS·MBC 제공
회사를 연애하는 장소 취급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 드라마 중에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은 작품이 많다. KBS2 ‘김과장’(위 사진)은 조직내에서 천대받는 경리부가 주 무대. MBC ‘자체발광 오피스’(오른쪽 사진)에선 서러운 일 많은 계약직 신입사원이, KBS2 ‘아버지가 이상해’에서는 오랜 백수 생활 뒤 인턴이 된 셋째딸이 주목받고 있다. KBS·MBC 제공
《“이런 개소리 좀 시키지 마요. 지원동기? 몰라서 물어요? 먹고살려고 지원했습니다!”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지금 눈에서 흐르는 건 땀일 뿐이야. 야근을 하다 컵라면을 먹던 에이전트26(유원모 기자)은 순간 체증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아니, TV에서 저렇게 내 맘을 후벼 파다니. 갑자기 업무만 냅다 떠안기고 팔랑팔랑 퇴근한 에이전트2(정양환 기자)의 뒤통수가 떠올라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TV, 직장인 얘기가 참 많이 나온다. 한때 사극과 판타지로맨스밖에 없더니 ‘현실의 회사’가 무대인 드라마가 연이어 쏟아졌다. ‘자체발광…’을 비롯해 KBS2 ‘김과장’, SBS ‘초인가족 2017’, KBS2 주말극 ‘아버지가 이상해’까지. 뭐, 100% 리얼하진 않아도 평범한 직장생활의 애환을 조명하려는 노력은 박수 받을 만하다.

진짜 직장인 눈엔 이런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특히 최근 드라마엔 ‘자체발광…’ 계약직 신입사원 은호원(고아성)이나 ‘아버지…’의 늦깎이 인턴 변미영(정소민), ‘김과장’ 경리부 대리 윤하경(남상미), ‘초인가족…’ 모태솔로 대리 안정민(박희본) 등 사회생활에 고단한 여성 캐릭터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20∼40대 실제 여성 직장인에게 촌평을 부탁해 봤다.

▽신모 팀장(44·유통 회사)=‘김과장’ 보면 나희용 윤리경영실장(김재화)이 나와. 학교로 치면 엄한 학생주임이랄까. 살짝 뜨끔했어. 평소 팀원들 복장이나 근태에 엄격한 편이거든. 아, 나도 저리 얄미운 시누이로 보이겠구나 싶었지.

▽이모 대리(32·공기업)=굳이 따지면 안 대리랑 비슷해. 미혼인 데다 감정 기복 별로 없고. 근데 확실히 남성 직원들은 여성 동료의 연애나 결혼에 쉽게 한마디씩 해. 항의하면 ‘농담인데 왜 정색하나’ 하지. 어느 순간 한 귀로 흘리는 게 신상에 이롭단걸 깨달았지.

▽김모 사원(25·호텔)=‘자체발광…’ 보며 3년 전이 떠올랐어. 그땐 취직만 시켜주면 간도 쓸개도 다 빼줄 수 있었는데…. 근데 사람 참 간사하지. 지금은 이 일이 적성에 맞나 고민이 커. 입사 동기들도 만나면 이직, ‘취집’(취업 대신 시집) 얘기야.

▽신 팀장=tvN ‘미생’(2014년) 때문인가. 한국 드라마도 확실히 달라졌어. 옛날엔 회사를 무슨 연애집합소로 그렸잖아. 요즘은 그나마 직장인 같더라고. 아, 변미영은 자신을 ‘왕따’시켰던 고교 동창을 상사로 만나잖아? 그 정돈 아닌데 지난해 대학동아리 후배를 클라이언트로 만났어. 정말 많이 혼냈던 앤데, 어찌나 불편하던지.

▽이 대리=정말 공감 가는 건 주인공이 아니야. ‘김과장’에서 다른 직원들은 상사한테 찍소리도 못 하잖아. 원래 사무실 분위기가 그래. 억울해도 조용히 넘어가고. 윤 대리처럼 임원한테 대드는 건 꿈도 못 꿔봤지. 그나마 옛날 드라마는 여성들이 ‘민폐 캐릭터’였잖아? 윤 대리는 일만큼은 딱 부러지게 잘해. 그게 이 시대 여직원의 사는 방식이야.

▽김 사원=그럴까? 작품에서 남녀가 꽤 동등한 것처럼 묘사되잖아. 그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야. 여성들이 얼마나 눈치를 많이 보는데. 승진이나 대우에서도 여전히 차별이 존재해. 그런 면에서 여직원이 주요 인물로 나오지만 실제 여성으로서 느끼는 미묘함은 잡아내질 못하는 한계가 있어.

▽이 대리=맞아. ‘초인가족…’에서도 같은 대리지만 박원균(김기리)과 안정민은 동등한 위치가 아니야. 여성은 2, 3배 더 노력해야 인정받아. 특히 육아휴직 같은 불가피한 경력단절이 있다 보니 밀리는 경우도 많고. 그걸 따라잡으려고 미친 듯 일하는 여성 선배들 많아. 근데 웃긴 건 남성이 열심히 하면 ‘능력 있다’ 그러면서, 여성에겐 ‘독하다’고 말해.

▽김 사원=딴건 몰라도 ‘여자의 적은 여자’란 프레임은 좀 부수고 싶어. ‘아버지가…’나 ‘자체발광…’도 그런 구도가 나오는데, 현실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 여성 동료가 꽤 돼. 그건 여성이 가장인 남성 직장인보다 절박함이 떨어진다는 고정관념만큼 잘못된 거 아닌가. ‘김과장’에 ‘사람을 잃으면 다 잃는 거다’란 말이 나오더라. 여성도 그런 연대의식을 좀 가질 필요가 있어.

▽신 팀장=계약직인 은호원이 상상 속에서 ‘몰라서 그랬으면 가르쳐주면 되잖아’라고 외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 근데 돌이켜보면 20년 넘게 사회생활 했지만 누구도 뭘 가르쳐준 적은 없어. 실수하면 ‘왜 안 물어보고 맘대로 했나’였고, 질문하면 ‘바쁜데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알려줘야 하나’란 말을 들었지. 여직원에게 회사는 정글이야. 늪과 맹수가 가득한. 하지만 그거 알아? 남직원도 똑같아. 자빠지는 곳만 다를 뿐이지.(다음 회에 계속)

정양환 ray@donga.com·유원모 기자


#직장인#직장생활 애환#직장 남녀평등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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