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족 “나이 들고 보니 철없던 시절”, 흙수저 “기회마저 사라지니 박탈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新語로 본 한국사회 <下>
오렌지족-된장녀-흙수저, 세대를 아우른 가상 방담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강산이 두 번 하고도 반쯤 바뀌었다.

1992년 ‘오렌지족(族)’이 등장한 지 25년. 당시 피 끓던 청춘은 이제 40대 중후반 아저씨 아줌마가 됐다. 2007년 테이크아웃 커피 잔만 들어도 눈총을 받았던 ‘된장녀’들도 벌써 30대 초중반. 그리고 2017년 대한민국 청년들은 인도 카스트 제도처럼 ‘흙수저’ ‘금수저’란 소릴 들으며 살고 있다.

이들은 다른 세대지만 20대에 한국 사회가 만든 신어(新語)에 자신이 규정받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들은 어떻게 살았고, 살고 있을까. 또 그들의 눈에 다른 세파를 거친 족(族)과 여(女)는 어떻게 보일까. 덤덤하나 뾰족했던, 여섯 명과의 인터뷰를 가상 대담으로 꾸몄다.

▽오렌지족A(44·자영업)=당시엔 좀 황당했다. 물론 부모 덕에 누린 게 많다. 그땐 해외 유학이 흔치 않았고. 하지만 범죄자 취급까지 당했다. 같이 놀다가도 뒤에서 딴소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 사고를 확대 해석하며 모두 싸잡아 비난했다.

▽된장녀Ⅰ(30·금융사 직원)=100% 공감한다. 내 인생인데 왜 난리인지 이해가 안 갔다. 빚을 냈든, 남친이 사줬든 자기 선택 아닌가. 복학생 오빠한테 공개적으로 욕먹은 적도 있다. 겉멋 들었다고. ××월드로 쪽지 보내 사귀자고 조를 땐 언제고. 그런 남성의 이중잣대가 크게 작용한 말이 된장녀라고 본다.

▽오렌지족B(47·공무원)=나이 먹고 생각도 좀 바뀌더라. 사회 나와서 돈 벌기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얼마나 철없어 보였을까. 평범한 직장인 월급을 하루 술값으로 날린 적도 있으니. 자식(중학생)한테 떳떳하게 말하긴 힘들지 않나.

▽흙수저㉠(32·S사 근무)=배부른 소리 한다 싶다. 직장 생활 몇 년째인데 학자금과 전세 대출이 1억 원쯤 된다. 죽어라 공부해 취직했는데 매달 몇십만 원만 손에 남는다. 소개팅 들어와도 누굴 만나기가 두렵다. 결혼도 빚내서 할 판이다.

▽흙수저㉡(28·중소기업 근무)=홀어머니랑 TV를 보는데 ‘수저 계급’ 얘기가 나왔다. 엄마가 “우리 딸, 뒷바라지 못 해줘 미안해” 하시더라. 오렌지족이건 된장녀건 탓할 맘은 없다. 다만 쳇바퀴 돌듯 가난이 대물림되는 세상은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닌가.

▽된장녀Ⅱ(35·L사 간부)=미안하고 가슴 아프다. 난 최소 ‘은수저’는 됐다. 그런 입장에서 봐도 요즘 한국 사회는 너무하다. 흙수저였다면 잘됐을 거란 자신이 없다. 근데 오렌지족은 그 정도 비난은 감내할 수준 아닌가. 된장녀는 인신공격에 가까웠다.

▽오A=글쎄, 허세 심한 된장녀야말로 욕먹을 만했지. 오렌지족은 비교적 솔직했다고 본다. 흙수저는…,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빈부격차는 있어 왔다. 금수저라 뭐라 하는 건 역차별이다.

▽흙㉡=그만큼 한국 상류층이 존경받을 만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가졌기 때문에 시기하는 게 아니다. ‘갑질’과 부정부패를 욕하는 거다. 기회마저 사라지니 박탈감을 느낀다.

▽된Ⅰ=‘편 가르기’가 더 문제다. 한국엔 자기와 다르면 삿대질부터 하는 문화가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오B=맞다. 20여 년 전 무조건 혀를 끌끌 차던 시선들이 싫었다. 이젠 내가 ‘꼰대’라 불리는 나이가 됐다. 적어도 서로를 단정 짓진 말았으면 좋겠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오렌지족#흙수저#된장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