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 피고인을 겨우 설득해 항소를 이어가고, 사건을 빨리 마무리하려는 검사와의 기싸움과 법정에서 펼치는 치밀한 변론까지….
SBS 드라마 ‘피고인’에서 아내와 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피고인(지성)을 위해 맹활약하는 국선변호사 은혜(소녀시대 유리)의 모습이다. 드라마뿐 아니라 최근 영화 ‘재심’처럼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 변호사들의 활약을 다룬 콘텐츠가 속속 등장하면서 국선변호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로 활동 중인 강철구(47·사법연수원 37기) 노형미 씨(36·여·사법연수원 44기)에게 드라마와 현실 속 모습을 비교해 들어봤다.
“이 사건은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피고인’에서 유리가 지성의 국선변호사로 나선 것은 법원 행정 직원에게 직접 선임계를 가져오면서부터다. 하지만 현실에선 찾을 수 없는 모습이다. “국선전담변호사는 사건을 임의로 수임할 수 없고, 해당 법원에서 지정한 사건의 피고인만을 변호한다”는 게 노 변호사의 설명이다. 국선변호사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법조인처럼 묘사되는 것 역시 현실과는 다르다. 노 변호사는 “2004년 국선전담변호사 제도가 도입되면서 국선변호사들은 매달 30여 건의 사건을 다뤄야 한다”며 “생활고보다는 높은 업무강도로 고생하는 모습이 현실과 더 가깝다”고 밝혔다.
실제 최근 로스쿨 도입에 따른 변호사 증가 등으로 변호사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져 지속적인 사건 수임과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국선전담변호사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이 발표한 지난해 상반기 국선전담변호사의 모집 경쟁률은 10.3 대 1에 달했다. 사법연수원과 로스쿨 최상위권 성적 보유자들이 다수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질 사건만 맡으니까 당신이 매번 지는 거야!”
드라마에서 지성이 검사 시절, 국선변호사로 만난 유리를 향해 내뱉은 말이다. 이에 대해 강 변호사는 “국선변호사의 피고인이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사회에서 소외된 경우가 많을 뿐 사선(私選)변호사가 참여하는 재판 무죄율과 다르지 않다”며 “국선전담변호사 역시 2년에 한 번 갱신 절차가 있어 경쟁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고 했다.
두 변호사는 피고인을 위해 악착같이 변호를 하는 드라마 속 국선변호사의 모습이 실제와 가장 가깝다고 입을 모았다. 강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건을 맡게 돼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큰 항의를 받아 법원 경위의 도움으로 뒷문을 통해 나간 적도 있다”며 “대부분의 피고인들이 도움을 청하기 힘든 상황에 있기 때문에 이들을 돕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고 말했다.
국선변호사 제도의 보완도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노 변호사는 “지금까지 기소 후 재판 단계에서만 국선변호사 제도가 운영됐지만 올해부턴 구속된 피의자의 경우 수사 때부터 변호 활동을 하는 ‘원스톱 국선전담변호’ 제도가 시범 실시된다”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따뜻한 사법 제도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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