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 안돼”… 미국의 단골 멘트를 시진핑이 들고나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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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 D-2]다보스포럼서 ‘개방적 세계경제’ 강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7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개방적 세계 경제를 유지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만이 모든 국가가 함께 번영할 수 있다”라고 강조하며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세계화 와 자유무역주의에서 한발 후퇴하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하지만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인 중국도 ‘중국 우선주의’라는 실리를 위해 세계화와 자유무역 이데올로기를 표방하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시 주석은 “‘경제 세계화’는 사회 생산력의 필연적인 결과이지 특정 국가(미국)가 만든 것이 아니다. 보호무역은 어두운 방에 자신을 가두는 꼴”이라며 “현재 가장 긴급한 과제는 경제 세계화를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전후 미국이 주도해 온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뒤늦게 뛰어든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개방경제 질서를 깨지 말라’고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이어 “경제 세계화야말로 세계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인류 문명의 진보에도 기여할 것”이라며 50분간에 걸친 연설에서 ‘경제 세계화’라는 용어를 10차례 이상 언급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인용해 “발전은 사람들의,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라며 불평등 해소를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세계 경제 발전에 중국의 역할도 강조했다. “중국도 세계 시장이라는 대해(大海)에 용감히 뛰어들었다”라며 “중국의 발전은 세계의 기회다. 중국은 단지 세계화의 수혜자가 아니라 공헌자다. 중국의 빠른 성장이 세계 경제 안정과 성장에 강하게 추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사는 용감한 자가 창조한다”라는 말로 연설을 마쳐 새 국제 질서를 중국이 주도하겠다는 포부와 의지를 나타냈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의 경제적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은 미국이 차지하고 있던 세계 경제 질서 지도국 자리마저 넘보고 있다. 시 주석의 이날 다보스포럼 연설은 국제경제적 힘의 전이 과정에 역사적인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 “사람들에게 비치는 시 주석의 모습이 트럼프 당선인과 대조를 이루지만 두 사람의 공약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라며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구호는 시 주석의 ‘중국의 꿈’이 내세운 주요 주제를 반복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의 시장 개방은 아직 갈 길이 멀다. 2015년 기준 중국의 평균 관세율은 9.8%로 미국의 3.5%보다 훨씬 높다. WSJ는 “시 주석이 무역을 통해 현대화를 추구하고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면서도 정작 국경 없는 세계라는 경제 비전은 불편해한다”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기술 분야에서 다국적기업을 몰아내면서 국영 기업의 몸집을 키우고 있다.

 이 신문은 “시 주석이 국가 주권을 강조하면서 인터넷에서 통제를 강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해 세계화의 선두 그룹에 해당하는 다국적 비정부기구(NGO)를 통제한 점도 ‘세계화의 수호자’와는 거리가 멀다”라고 지적했다.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추진을 막기 위해 한류 차단 등 각종 경제 제재를 내놓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가운데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16일 워싱턴 프레스클럽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 화상으로 참여해 “트럼프는 중국이 수출에서 이익을 보려고 인위적으로 중국 위안화의 가치를 낮게 유지하려 한다고 보지만 현재 중국은 보유 외환을 풀어서 위안화의 가치 하락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실정”이라며 “(그런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 윤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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