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위로 쏟아지는 별빛… ‘나미나라’의 유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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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전문기자의 코리안 지오그래픽]남이섬에서의 하룻밤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동틀 무렵 청평호의 이 광경. 우리는 잊고 지내는 이 평범한 일상이 헬렌 켈러 여사에겐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보고픈 ‘가슴 설레는 기적’이었다. 지난달 19일 새벽 남이섬의 헛다리 앞에서 촬영. 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동틀 무렵 청평호의 이 광경. 우리는 잊고 지내는 이 평범한 일상이 헬렌 켈러 여사에겐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보고픈 ‘가슴 설레는 기적’이었다. 지난달 19일 새벽 남이섬의 헛다리 앞에서 촬영. 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평생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분이 계셨다. 여든여덟 생을 그렇게 살다간 미국의 헬렌 켈러 여사(1880∼1968)다. 그런 그녀의 삶, 기적과 같다. 보고 듣고 말하는 어떤 이보다도 많은 것을 남기고 떠났다. 손바닥에 쓴 필담, 입술과 목에 댄 손가락으로 읽어낸 말, 그것도 여의찮으면 그림자처럼 헌신한 두 의인의 입을 통해…. 그 삶은 오직 하나, 고난 받는 이에게 희망을 주는 헌신이었다. 참정권이 없던 미국 여성과 사람대접 못 받던 흑인을 위한.

 그런 그녀가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1937년 일본을 거쳐 일제가 세운 위성국 만주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생전 그녀의 여행엔 쉼이 없었다. 냉전시대에 미국 정부가 우방국 관리방편의 하나로 장애극복 신화를 홍보하는 차원이긴 했어도. 대중 앞에서 그녀는 어떤 말도 필요치 않았다. 스스로가 희망이고 구원이어서다. 개성 역에서도 그랬다. 그녀가 탄 기차가 지나간다는 걸 알고 사람들이 모였다는 소식에 열차 맨 뒤 칸의 테라스로 나가 그녀는 즉석연설을 했다. 도우미의 손바닥에 쓴 필담으로. 

 그런데 며칠 전 찾은 남이섬의 새벽이 나를 그녀에게로 이끌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50대에 쓴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란 글이었다. 그녀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둘째날에는 꼭 ‘동트기 전에 일어나서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가슴 설레는 기적을 바라보리라. 그리고 잠든 대지를 깨우는 태양의 장엄한 광경을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리라’고 소망했다. 그날 남이섬의 새벽에 나는 그런 경험을 했다.

 아침 여섯시 반, 장소는 섬 남단의 창경대. 하류 청평댐에 막혀 조성된 청평호가 양편 산줄기 사이로 넓게 수면을 드리운 호반이다. 그 수변풍광은 한강 양수리(경기 양평군)의 두물머리를 빼닮아 남이섬의 손꼽히는 자랑거리다. 루게릭 병으로 숨진 오름의 사진작가 김영갑(1957∼2005)이 청평호 물안개를 촬영한 곳도 바로 여기다.

 오랫동안 여행취재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주말만 피하면 우리나라 어떤 여행지도 만족할 만하다는 것이다. 사람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자연과 실종된 인심,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한가로운 평일엔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어서다. 산사의 풍경소리와 절마당의 빗질자국, 호젓한 산길과 그윽한 산경, 한산한 국도와 비교적 막힘없는 고속도로…. 정취가 있는 이라면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대낮이 아니라 저녁과 밤, 아침에 그 모든 걸 홀로 즐기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한겨울, 승주의 송광사에서다. 저녁공양 즈음 찾아간 나는 유숙을 청한 뒤 새벽 세 시 도량석(道場釋·스님이 잠을 깨우기 위해 경내를 돌며 두드리는 목탁)에 일어나 새벽예불에 참석했다. 속세라면 모두가 단잠에 빠졌을 첫새벽. 그런데 산사는 달랐다. 가사장삼을 차려입고 대웅전을 메운 스님들은 부처님 말씀에 귀의하겠다는 엄숙한 선서를 수십 번 반복하는 예불로 하루를 열었다. 그전에는 몰랐던 도량의 이 장엄한 매일아침 의식. 여행자에겐 감동이었다.

 그 넓은 남이섬에 남은 이라고는 투숙객 수십 명과 직원뿐. 섬은 오후 10시가 되자 소등으로 한순간에 암흑천지에 고립무원의 별천지로 새롭게 태어났다. 불빛 없는 세상, 소음이 사라진 공간, 발길이 끊긴 섬. 깊은 가을에 이 섬을 찾은 여행자에게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이 또 있을까. 십수 년 전부터 언젠가 꼭 해보리라 마음먹었던 ‘남이섬에서의 하룻밤’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토록 환상적이었다. 

 그 밤 호텔 정관루에선 작은 콘서트도 열렸다. 주인공은 서울 성균관대학교 앞 카페 ‘드럼’의 주인장 박운용 씨. 인문학공부모임 아다지오(我多智悟·회장 강신장 모네상스대표)와 함께 온 그는 통기타와 노래로 깊어가는 남이섬의 가을밤을 흔들었다. 김광석 노래속의 그 촉촉한 우수가 가을밤 남이섬의 차가운 공기를 적실 그즈음, 호텔정원에 피운 모닥불 주변에선 몇몇 사람이 고기를 굽고 술잔을 기울였다. 구름에 가려 달빛도 없었건만 섬의 은행나무길만큼은 희미하게 드러났다. 바닥을 덮은 노란은행잎 덕분이었다.

헛다리로 이어지는 낙우송왕실정원의 아침 풍광.
헛다리로 이어지는 낙우송왕실정원의 아침 풍광.
 그리고 새벽. 나는 주저 없이 숙소를 나와 물가로 나섰다.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기적’을 공감하고 싶어서. 그런데 그런 이가 나만이 아니었다. 벌써 여러 사람이 차가운 아침공기를 가르며 섬 곳곳을 산책하고 있었다. 남이섬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호수 왼편의 산등성에서 해가 뜨면서. 그 빛에 섬의 나무들이 반짝였다. 섬은 다시 생기와 활력을 되찾으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오전 7시 15분 첫 배편으로 들어온 부지런한 여행자들의 감탄사를 들으며.

 섬을 나서며 나는 또 한 번 내게 약속을 했다. 올겨울, 온 섬이 막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인 날 밤, 다시 한 번 찾겠노라고. 그 한밤의 교교한 달빛 아래서 흰 수피(樹皮)가 더욱 하얗게 돋보일 자작나무 숲에서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월광(月光)을 듣겠노라고.   
 

 
▼불에 탄 서장대 폐목재로 만든 ‘남이장대’… 빈 소주병 녹여 만든 초록빛깔 유리타일▼
 
‘생명의 섬, 부활의 땅’ 곳곳에 재활용품

 
송파은행나무길의 낙엽 중 절반은 서울 송파구청에서 모아다 깐 것이다.
송파은행나무길의 낙엽 중 절반은 서울 송파구청에서 모아다 깐 것이다.
 남이섬 선착장엔 이런 글이 붙어 있다. ‘나미나라 공화국(Naminara Republic).’ 매표소에 ‘출입국관리사무소’란 간판을 붙인 이유다. 이 ‘섬나라’의 교통편은 두 개. 선박(왕복)과 집와이어(Zip Wire·육지→섬 일방)다.

 ‘나미나라 공화국’은 원래 섬이 아니다. 북한강의 청평댐 축조로 수면이 올라가며 육지가 고립되어 생긴 섬 아닌 섬이다. 1960년대에 민병도 씨(1916∼2006)가 한국은행 총재를 물러나며 받은 퇴직금으로 사들였다. 당시에는 아홉 가구가 땅콩농사나 짓고 뽕나무만 있던 척박한 땅이었다. 그게 나무가 우거진 섬으로 개벽한 건 당시에 시작한 나무심기와 조경 덕분. 민 씨는 천리포수목원 설립자 민병갈 씨(1921∼2002)와 친구였고, 두 사람은 경쟁하듯 남이섬과 천리포에서 나무심기에 정성을 쏟았다.

 그런 남이섬에서 가장 괄목할 대목은 ‘재활용을 통한 부활’. 섬에 넘쳐나는 생명력의 원천이 버려지거나 죽어버린 폐품이란 것이다. 첫 사례는 호안(湖岸)보강. 섬이 아니고 강변이다 보니 토양유실이 많다. 폭우로 상·하류의 댐 수문을 모두 열면 북한강의 유속이 빨라지고 빨라진 물길은 섬의 살을 쓸어가 버린다. 그걸 막기 위해 쌓은 석축의 돌은 1970년대에 철거한 여의도비행장의 활주로에서 갖고 온 것이다. 

 ‘상상마루’분수대와 ‘유리메타’다리를 장식한 두꺼운 판유리도 비슷하다. 삼성증권이 2009년 사옥을 이전하며 처리를 고민했던 재활용불가 판막이용 강화유리다. 섬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초록빛깔 유리타일도 섬 개발 때 끝도 없이 나오던 빈 소주병을 녹여 만든 것. 송파은행나무길의 노란 은행잎도 그 절반은 서울 송파구청이 관내에서 수거해 보내준 것이다.

 재활용의 백미는 남이 장대(將臺·장수가 올라서서 지휘하던 대). 대형기단 위에 있는 높이10.8m의 이 2층 누각은 2006년 화재로 잿더미가 된 수원 화성(유네스코 세계유산) 서장대의 복사판. 나미나라는 문화재청, 수원시와 협의해 서장대의 폐목재를 가져와 이 건물을 지었다. 모자란 부분을 채운 목재와 기와도 특별하다. 나무는 낙산사 화재(2005년) 때 불타 죽은 소나무를 켠 것이고, 기와는 지리산 쌍계사가 새 기와로 바꾸며 버린 것이다. 호텔 정관루 잔디밭의 조형석은 맷돌을 파내고 버린 기하학적 문양의 석재이고, 드라마 ‘겨울연가’에 등장했던 벽난로집인 초옥공방은 강 건너에 버려졌던 100년 폐가를 살린 것이다.

빈 소주병을 눌러 만든 남이섬 기념품 시계.
빈 소주병을 눌러 만든 남이섬 기념품 시계.
 이런 상생과 부활은 섬에 상주하는 환경운동연합과의 긴밀하고도 끈끈한 협업의 결과이다. 쓰레기는 자원화가 원칙. 죽은 나무도 거꾸로 세워 조형물로 활용할 정도다. 태운 나무의 재도 기념품을 생산하는 도자기공방의 잿물원료로 쓴다. 아모레퍼시픽이 보내온 화장품 폐용기도 섬 입구에 세운 ‘사랑과 평화의 등대’에서 다시 태어났다.

 섬엔 유니세프 홀도 있는데 수입금은 제3세계 어린이의 예방접종에 쓰인다. 방문객이 만들어 기증하는 ‘아우(AWOO)’라는 이름의 봉제인형을 ‘입양해’ 자금을 마련한다(이곳에선 인형판매를 ‘입양’이라고 한다). 그러니 나미나라는 ‘생명의 섬, 부활의 땅’이라 할 만하다.

조성하 전문기자 춘천(강원)에서 summer@donga.com

 
※여행정보
 
나미나라공화국 국기를 게양하고 운항하는 남이섬 셔틀보트.
나미나라공화국 국기를 게양하고 운항하는 남이섬 셔틀보트.
 남이섬: 서울에서 한강을 따라 63km지점의 청평 호반에 있다. 둘레 5km의 섬(46만 km²)은 유니세프 어린이친화공원이다. ▽입장료 △어른: 1만 원 △중고생·70세 이상·외국인: 8000원 △초등학생 이하: 4000원 ▽셔틀보트: 운항(10분)은 오전 7시 반(가평나루)∼오후 9시 40분(남이나루). 031-580-8114 www.namisum.com

 찾아가기:
◇셔틀버스: 서울 인사동·남대문에서 매일 오전 9시 반 출발. 남이섬 출발은 오후 4시. 왕복 1만5000원 ◇손수운전: 내비게이션 ‘남이섬 선착장 혹은 매표소’ 입력. 하루 주차 4000원 ◇철도 ▽ITX-청춘열차: 가평역 하차 △청량리역 42분 △상봉역 50분 △용산역 60분 소요

 문화체험: △남이섬 공예원: 흙장난부터 유리공예까지 △남이섬환경학교: 환경교육센터가 설립한 교육기관 △녹색가게체험공방: 섬에서 얻은 재료로 종이 만들기. 전국녹색가게협의회가 운영

 축제·전시: △그림책놀이터: 숲 속 도서관의 책 놀이터. 어린이 책 2만여 권과 86개국의 그림책 5000권 소장 △노래박물관: 지구촌 민속악기 전시장 △나미콩쿠르: 매년 개최하는 국제동화그림 수상작 전시장 

 숙소: ◇나미나라 국립호텔 정관루(靜觀樓): 본관(45실)과 서쪽 강변의 별관(2∼15인실의 13개동)으로 구성 ▽본관: 부티크형 아트호텔. 객실(2∼4인용)은 작가 화가 가수 등이 제각각 개성적 테마로 꾸몄기에 같은 방이 없다. 평일(할인가) 9만7000∼13만9000원 ▽별관: 가족 혹은 단체를 위한 콘도별장, 커플용 투투별장이 있다. 강변의 독립형 공간으로 평일(할인가) 16만∼24만 원
#헬렌 켈러#남이섬#나미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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