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 사회 공기가 달라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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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法 시행 첫날 확 바뀐 풍경
공무원들 “시범 케이스로 걸릴라”… 식사 약속 미뤄 한정식 식당 썰렁
기업 對官업무 직원들 골프 취소

 거짓말처럼 청탁 전화가 끊긴 병원, 손님이 사라진 한정식 식당, 그리고 웬만한 약속은 모두 미룬 공무원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공직자와 언론사, 사립학교 임직원 등의 금품 수수와 부정 청탁을 금지하는 김영란법은 사회 곳곳에서 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클린 코리아’의 시금석이 될지 관심이 집중된 이날 경찰과 국민권익위원회에는 관련 신고가 들어왔지만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하루 종일 청탁 전화가 단 한 통도 오지 않아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진료 일시를 앞당겨 달라거나 병실을 옮겨 달라는 등의 민원을 하루에도 여러 건 받았는데”라며 “완전히 달라진 상황에 법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구 내자동 한정식 식당가는 이날 빈방이 부쩍 많이 보였다. 점심때는 물론이고 저녁 시간에도 식당마다 많아야 2, 3팀이 식사를 할 뿐이었다.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자리 잡아 고위 공직자들이 즐겨 찾는 것으로 알려진 이곳은 법 시행 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공무원들은 일단 약속을 미루며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확연했다. 법 시행 초기 ‘시범 케이스’가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경기 과천시의 한 경제부처 고위 공무원은 “9, 10월에 잡힌 약속들은 양해를 구하며 연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검찰 관계자도 “민감한 시기에 괜한 문제를 일으킬까 봐 신경이 쓰여 경찰 관계자 등과의 저녁 약속을 취소했다”고 털어놓았다.

 기업에서 공무원 등을 상대하는 임직원들도 이날부터 생활이 180도 달라졌다. A사에서 대관(對官)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임원은 “공직사회는 투서가 워낙 흔하기 때문에 절대 무리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당분간은 몸을 사리며 그야말로 ‘떳떳한 업무적 만남’만 가져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 회사는 연말까지 잡혀 있던 골프 모임을 모두 취소하거나 이미 앞당겨 진행했다.

 김영란법은 시행 전부터 논란을 일으켜 결과적으로 다른 어떤 법보다 널리 홍보가 됐지만 아직도 잘 모르거나 달라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도 감지됐다. 울산시 공무원 B 씨는 “출근길에 ‘구청에 전화 한 통 해달라’는 친척의 부탁을 받았다”며 “야속하게 받아들일까 봐 김영란법 얘기를 꺼내지 않고 ‘알았다’고만 한 뒤 구청에 연락하지 않았다. 적잖은 일반인은 법 시행조차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특정 행위가 위법이냐, 아니냐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는 모습도 보였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들이 ‘이거 걸리지 않나’라는 농담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이미 혁명적인 의식 변화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

김도형 dodo@donga.com·김지현·김단비 기자
#김영란법#공무원#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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