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왕’ 이젠 하늘나라서 티샷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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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널드 파머, 심장질환으로 별세
마스터스 4차례 포함 통산 95승
공격적 스타일 유명… 골프대중화 기여, 의류사업 등 스포츠마케팅 선구자

 그린 위에서 ‘골프의 왕’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됐다. 아널드 파머(미국)가 26일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더 킹’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파머는 잭 니클라우스(미국), 게리 플레이어(남아프리카공화국)와 함께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골퍼였다. 1955년 프로에 데뷔한 파머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62승을 포함해 프로 통산 95승을 거뒀고, 1974년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메이저 대회 7승 중 마스터스에서만 4번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마스터스에 강한 면모를 보여 대회 장소 이름을 따 ‘오거스타의 사나이’로 불리기도 했다. 1955년부터 2004년까지 마스터스에만 50번 참가한 파머는 2007년 대회에서부터 시타를 했지만 올해는 어깨 부상으로 시타를 하지 못했다.

 파머는 골프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PGA투어 승수에서는 5위를 기록했지만 대중의 인기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파머가 출전하는 대회마다 ‘아니의 군대(Arnie's Army)’라고 불리는 열성 팬들이 몰렸다. 미국의 골프전문매체 ‘골프위크’의 한 칼럼니스트는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교하기도 했다.

 파머는 시원한 장타와 함께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디를 노리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구사했다.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다 보니 늘 패배마저도 극적이었다. 그는 “야구의 (홈런 타자) 행크 에런, 미식축구의 조 몬태나와 같은 존재”라는 평을 들었다. 이런 파머의 공격적 경기 스타일은 아버지 밀프레드 파머의 영향을 받았다. 소아마비를 앓은 그의 아버지는 골프장 코스 관리와 레슨을 생업으로 삼았고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다. 아버지는 3세 때부터 그에게 골프를 가르치면서 늘 “얘야, 공을 찾아서 때리고 또 힘껏 때려”라고 가르쳤다.

 PGA투어 최초로 연간 상금 10만 달러를 넘겼던 파머는 스포츠 산업화에서도 선구자였다. 자신의 이름을 딴 골프용품,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스포츠 마케팅의 씨앗을 뿌린 파머는 후배 양성을 위한 골프대회를 운영하고 여성과 아이를 위한 메디컬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미국골프협회(USGA)는 이날 “골프의 위대한 홍보대사 파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보낸다”고 밝혔다. 타이거 우즈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당신이 없는 골프는 상상하기 힘들다. 당신이 보여준 우정, 조언, 웃음에 감사를 보낸다”고 전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아널드 파머#골프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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