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세계적 리더 많이 만나… 미스 스웨덴, 미스 아르헨, 미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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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백악관 기자단 만찬 유머 연설… 트럼프 외교역량 부족 꼬집어

“이게 제 마지막 연설, 아니 어쩌면 최후의 연설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임기 내내 유머 감각 넘치는 입담을 과시해 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지난달 30일 마지막 백악관출입기자단 만찬 연설은 당파를 뛰어넘는 풍자로 가득했다.

첫 인사말은 공화당 대선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를 겨냥했다. 주류 언론과 사이가 좋지 않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기자단 만찬 연설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만찬에 초대받은 트럼프가 참석하지 않은 것에 대해 “도널드에겐 너무 볼품없었기 때문일 것”이라면서 “아마 집에서 ‘트럼프 스테이크’를 먹고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스테이크는 트럼프가 운영하다가 도산한 업체다. 또 “트럼프의 외교정책에 걱정들이 많다는데 그는 몇 년간 세계적 리더들을 만나 왔다. ‘미스 스웨덴’, ‘미스 아르헨티나’, ‘미스 아제르바이잔’…”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운영해 왔다.

공화당 대선 경선 2위 주자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이 최근 농구 골대를 ‘농구 링’으로 잘못 말한 것에 빗대 “그의 잘못된 어휘 중에 또 뭐가 있을까요? 야구 배트가 아닌 야구 스틱? 미식축구 헬멧이 아닌 미식축구 모자? 확실한 것은 (그에게) 난 외국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아니라 캐나다에서 태어난 크루즈의 약점을 골려먹은 것이다.

그는 이날 식사 메뉴가 ‘고기 또는 생선’인 점에 빗대 “오늘 공화당 지도부의 많은 이들이 선택 메뉴에 (고기나 생선이 아닌) ‘폴 라이언’을 적었다”고 말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올 7월 전당대회에서 트럼프나 당내 ‘이단아’인 크루즈 대신 경선에 참가하지 않은 폴 라이언 하원의장을 대선 후보로 추대하는 방안을 고민해 왔다.

민주당 대선후보들도 도마에 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늘 연설이 제법 잘 먹히면 나도 내년에 골드만삭스에서 ‘심각한 (표정의) 터브먼’ 좀 두둑이 챙겨야겠다”고 했다. 해리엇 터브먼은 최근 20달러 지폐의 새 모델로 선정된 흑인 여성이다. 이날 불참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월가의 골드만삭스로부터 거액의 강연료를 챙긴 것을 꼬집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년 이 시간엔 어떤 여성(she)이 이 자리에 서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는 덕담으로 유일한 여성 대선후보인 클린턴을 띄워줬다.

클린턴의 경쟁자로 이날 만참에 참석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에 대해선 “동무(comrade)”라는 호칭을 붙였다. 샌더스의 사회주의적 정책을 공산주의라고 비난하는 보수층에 대한 풍자였다. 이어 “당신이 백만장자처럼 보인다. 당신의 표현에 따르면 3만7000명이 27달러씩 낸 기부금처럼 보인다”라는 말로 월가의 큰손 대신 다수의 소액기부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자랑해 온 샌더스를 슬쩍 부추겼다.

자기 풍자도 빠지지 않았다. “8년 전의 나는 정치의 색조(tone)를 바꿀 때라고 말했다”면서 2009년 2월 백악관에 처음 입성했을 때 자신의 발언을 환기시킨 뒤 “결국 반백이 다 돼 관 속에 들어가기만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고 했다. 지난주 영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이 레임덕이 됐음을 실감했다며 “(세 살배기) 조지 왕자가 파자마 차림으로 우리 모임에 나타나 얼굴에 뺨을 맞는 듯한 모욕을 느꼈다”고 말해 폭소를 끌어냈다.

유머 가득한 연설은 진지한 마무리로 이어졌다. 그는 이란에 1년 넘게 억류됐다가 풀려난 워싱턴포스트의 제이슨 리자이안 기자를 소개하며 남은 임기 마지막까지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고 밝혔다. 또 “저널리즘의 원칙을 압박하는 상업주의에 맞서는 수많은 당신들이 있어 고맙다”며 기자단 전체에 경의를 표했다.

마지막으로 “이제 두 단어만 남았다”고 말한 뒤 “오바마 퇴장(Obama out)”을 외치고 마이크를 연단 위에 떨어뜨렸다. 지난달 은퇴경기 후 팬들에게 고별 인사할 때 ‘맘바 아웃’을 외치며 마이크를 떨어뜨린 NBA 농구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별명이 아프리카산 독사 ‘블랙 맘바’였음)를 따라한 것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트럼프#오바마#기자단#만찬#유머#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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