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쇄전… 초주지가… 新사자성어가 나르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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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극 ‘육룡이 나르샤’ 신조어 논란

드라마 속 ‘부전쇄전’ ‘초주지가’ 등 ‘육룡이 나르샤’ 속에만 등장하는 용어들은 대본을 쓴 작가가 만들어 낸 사자성어다. 김영현 작가는 “당시 정도전 등 지식인이라면 충분히 만들어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SBS TV 화면 캡처
드라마 속 ‘부전쇄전’ ‘초주지가’ 등 ‘육룡이 나르샤’ 속에만 등장하는 용어들은 대본을 쓴 작가가 만들어 낸 사자성어다. 김영현 작가는 “당시 정도전 등 지식인이라면 충분히 만들어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SBS TV 화면 캡처
‘부전쇄전(부塼碎塼), 초주지가, 지재상인은 무슨 뜻일까?’

시청률 13∼14%를 오가며 월화드라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가 사전에서 볼 수 없는 신조어들을 쏟아내며 논란을 부르고 있다.

‘팩션(faction·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을 표방한 드라마로서 용어도 새로운 것으로 쓴다는 의미가 있지만 ‘족보 없는’ 신조어 때문에 시청자들이 헷갈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번 시작된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고 거대한 자중지란(自中之亂)이 일어나게 됩니다. 부전쇄전이죠.”(정도전)

정도전(김명민)은 고려 말 ‘도당(고려 말 최고 정무기관) 3인방’의 하나인 백윤을 죽이면 이인겸과 경복흥이 서로 의심해 싸움을 시작하고 결국 둘도 함께 무너질 것이라며 부전쇄전이란 말을 사용한다. 드라마 자막에선 부전쇄전을 ‘돌을 들어 돌을 친다’라고 설명했다. 적으로 다른 적을 물리친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와 같은 뜻으로 쓴 것. 또한 고려의 최고 권세가인 이인겸은 함흥에서 개경으로 온 이성계를 굴복시키기 위해 그의 약점인 ‘초주지가’ 일화를 언급한다. 초주지가는 드라마에서 어떤 한자인지 보여주진 않지만 주인을 물어뜯은 가문이란 뜻으로 이성계가 전에 모시던 성주를 배반한 것을 지칭한다.

그뿐만 아니라 ‘수량지종’(세금을 걷는 데 한계에 이른 땅), ‘지재상인’(정보를 매매하는 상인) 등 ‘육룡이…’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용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용어들은 ‘경적필패(輕敵必敗·적을 가벼이 보면 반드시 패배함)’ ‘성사재천(成事在天·일이 이뤄질지는 하늘에 달렸다)’ 등 기존 사자성어와 섞여 사용된다. 평소 ‘육룡이…’를 즐겨 본다는 김하나 씨(25·여)는 “드라마 속에 숨은 ‘가짜 용어’들이 흥미로울 때도 있지만 진짜인지 헷갈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는 ‘육룡이…’ 속 신조어가 원래 있는 용어인지 묻는 질문이 이어지고 아예 신조어를 회별로 정리한 글도 올라왔다. 네이버 오픈백과사전에는 “육룡이 나르샤에서 나온 말입니다”라는 꼬리표를 달고 용어 설명이 등재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해동갑족(海東甲族)’이란 용어를 둘러싸고 누리꾼의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드라마 속에서는 ‘통일신라 때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귀족가문’이라고 설명했는데 역시 일반 사전에 없는 말. 조선 후기 문신 신완(1646∼1707)의 ‘경암집(絅菴集)’에 그의 본관인 ‘평산 신씨’에 대해 ‘세상에서 해동갑족이라 말한다(世稱海東甲族)’로 언급하긴 했지만 드라마와는 다른 뜻이다. 원래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이란 뜻으론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는 용어가 있다.

‘육룡이…’의 김영현 작가는 “당시 지식인들이라면 상황에 맞게 그런 단어를 만들어 쓸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하고 용어를 새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해동갑족에 대해서도 “후손들의 반발을 고려해 일부 등장인물을 가명으로 썼는데 ‘해동갑족’ 또한 ‘삼한갑족’에 해당하는 문중의 반발 등을 피하고자 사용했다”고 말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육룡이…’가 팩션인 만큼 신조어라 하더라도 창작의 자유를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사자성어는 본래 교훈적 의미를 담고 있는 함축적 단어인데 드라마의 경우 한글 문장을 네 글자 한자어로 기계적으로 옮겼을 뿐”이라며 “사자성어에 대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육룡이나르샤#드라마#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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