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철 기자의 파넨카 킥]킬러 사라진 ‘삼바’… 킬러 힘빼는 ‘탱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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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잡이가 없어 고민인 나라. 1994년 7월부터 2001년 4월까지 무려 82개월 동안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를 지킨 ‘삼바 축구’ 브라질 축구대표팀에 “골잡이가 없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과 2015 코파아메리카에 나선 브라질 대표팀은 골잡이 부재로 울어야 했다.

브라질이 월드컵 최다 우승국(5회)의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카나리아 군단’(브라질 대표팀 애칭)의 최전방 공격수들 덕분이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조국에 첫 우승을 안긴 ‘축구황제’ 펠레(6골), 1994년 미국 월드컵 우승을 이끈 호마리우(5골), 2002년 한일 월드컵 우승 주역 호나우두(8골)로 이어진 골잡이 계보는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호나우두가 은퇴(2011년)한 뒤에는 골잡이라고 부를 만한 선수가 없다. 기대주로 여겨지던 아드리아누 등은 경기력이 떨어져 대표팀에서 제외된 지 오래다.

결국 브라질은 지난해 월드컵부터 측면 돌파와 중앙 침투 능력이 뛰어난 공격수 네이마르에게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네이마르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게 문제다. 네이마르가 부상으로 빠진 지난해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에 1-7로 대패하는 순간 축구팬들은 브라질 축구의 암울한 현실을 봤다. 코파아메리카에서도 브라질은 네이마르가 비신사적 행위로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아 뛰지 못한 8강전에서 파라과이에 패했다. 둥가 감독이 최전방에 내세운 지에구 타르델리(산둥 루넝) 등은 “파괴력이 떨어진다”는 비판만 받았다. 브라질로서는 삼각형의 독특한 머리 모양을 하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한일 월드컵 득점왕에 오른 호나우두가 그리웠을 법하다. 당시 호나우두와 함께 우승을 이끈 브라질 미드필더 히바우두는 “요즘은 아무나 브라질 대표팀에 들어오는 것 같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브라질의 최전방 공격수가 사라진 것은 공격 전술이 변화한 영향도 있다. 2선 침투로 득점을 노리는 전술이 각광받으면서 공중 볼 경합과 몸싸움에 뛰어난 최전방 공격수는 줄어들고, 발 빠르고 조직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측면 공격수가 늘어났다. 그러나 강팀은 경기 상황에 따라 빠른 전술 변화가 가능해야 한다. 둥가 감독이 명가 재건에 성공하기 위해선 개인 기량으로 상대 수비를 허물 수 있는 최전방 공격수를 발굴해 득점 루트를 다변화해야 한다. 축구 전술은 유행처럼 돌고 돈다. 최전방 공격수를 중심으로 한 전술은 내일이라도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다. 코파아메리카 우승국 칠레는 ‘4백 수비’에 밀려 자취를 감췄던 ‘3백 수비’를 통해 99년 만에 남미 축구 정상에 올랐다.

골잡이가 있어도 도와줄 선수가 없어 고민인 나라도 있다. 코파아메리카에서 준우승에 그친 아르헨티나는 ‘득점 기계’ 리오넬 메시를 앞세우고도 우승에 실패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부터 아르헨티나는 최전방에 침투하는 메시에게 볼을 찔러줄 미드필더를 찾지 못했다. 메시는 지난 시즌 소속팀인 바르셀로나에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등 세계 최정상급 미드필더의 도움을 받아 43골(프리메라리가 기준)을 몰아쳤다. 그러나 현재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미드필더 에베르 바네가 등은 이니에스타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진다. 메시가 최전방을 포기하고 중원까지 내려와 미드필더 역할을 수행한 이유다. 결국 메시는 누적된 피로로 칠레와의 결승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헤라르도 마르티노 아르헨티나 감독은 “메시는 골을 넣지 못해도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착각이다. 아르헨티나 골잡이는 준우승에 그친 후 단단히 화가 난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과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메시가 코파아메리카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지만 MVP 트로피 수상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코파아메리카 공식 홈페이지에는 베스트 골키퍼상 등 수상 내용이 올라와 있지만 MVP 수상자에 대한 내용은 없다. 대회 주최 측은 메시가 MVP에 선정됐는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네이마르#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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