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에 부활하는 건전가요,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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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청소년 거친 언어, 노래로 순화’ 취지로 추진

“아 ×발. 날씨가 왜 이리 ××하냐. ‘버카충(버스카드 충전)’도 해야 하네, 짱나.”

청소년들의 대화를 무심코 듣다 보면 비속어와 은어, 욕설이 10초 단위로 튀어나오곤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3월 19∼31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 언어문화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청소년 언어’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혔다(48.9%). 중고교생 500명을 대상으로 한 같은 조사에서도 77.4%가 ‘청소년 언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급기야 정부는 청소년 언어문화를 주제로 한 ‘건전가요’를 제작해 보급에 나서기로 했다.

○ ‘청소년 언어 문제 심각’이 배경


문체부는 4월 초 작곡가부터 찾아 나섰다. 논의 초기엔 가수 A 씨에 대한 섭외가 진행됐지만 A 씨 측에서 “TV 예능 프로 등에서 캐릭터상 독한 말을 자주 해 언어순화 노래를 만드는 데 적합지 않다”며 고사했다고 한다. 이후 여러 작곡가에게 문의하던 중 언어문화개선 홍보대사를 맡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를 통해 록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에게 의뢰가 들어갔다. 김태원이 “무료로 곡을 만들어주겠다”고 수락하면서 건전가요 제작이 시작됐다.

이번 노래는 단순하게 ‘바른 말 쓰자’는 식의 지시 형태가 아니라 가사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청소년이 잘못된 언어습관을 인식하고 바른 언어 활용에 공감하도록 제작할 예정이다. 문체부 측은 “청소년이 좋아하는 댄스곡 형태가 되도록 김태원 씨와 논의할 계획”이라며 “중고교생의 관심을 최대한 끌도록 완성된 곡은 아이돌 가수가 부르도록 섭외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록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 그는 청소년 언어문화를 주제로 한 2015년판 건전가요를 작곡할 예정이다. 동아일보DB
록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 그는 청소년 언어문화를 주제로 한 2015년판 건전가요를 작곡할 예정이다. 동아일보DB
○ 기성세대적 발상 vs 노래 퀄리티가 중요

이 노래는 10월 완성돼 전국 학교와 인터넷에 CD나 음원 형태로 배포된다.

청소년들에게 호응을 얻어 정부가 기대한 효과를 낼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청소년 언어 순화용 가요를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기성세대적 관점이란 지적이 나온다. 미러볼뮤직 이창희 대표는 “의도야 좋지만 자유분방해야 하는 대중음악에 교훈적 메시지가 들어 있다면 청소년이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 의문”이라며 “정부가 기획했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그냥 일반 대중음악처럼 보여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건전가요는 부정적 이미지도 적지 않았다. 1979년 공연윤리위원회는 ‘건전가요 음반 삽입의무제’를 시행해 가수가 음반을 발매하면 건전가요 한 곡을 필수적으로 수록하게 했다. 당시 음반에는 전체적인 음악 콘셉트와 전혀 다른 ‘진짜 사나이’ ‘잘살아보세’ 등이 삽입됐다. ‘아! 대한민국’(정수라·1984년) 등 일부 건전가요가 대중적 인기를 누렸지만 198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건전가요=관제 가요. 문화 통제’라는 부정적 인식이 컸다.

큰 인기를 누린 이문세 4집 ‘사랑이 지나가면’(1987년)에는 건전가요 ‘어허야 둥기둥기’, 변진섭 1집 ‘홀로 된다는 것’(1988년)에는 ‘과수원길’이 실렸는데 당시 중고교생들은 카세트테이프를 사자마자 건전가요를 지우기 바빴을 정도다. ‘건전가요 음반 삽입의무제’는 결국 1990년대 초반 폐지된다.

문체부는 이번 건전가요는 과거와는 취지가 전혀 다르다는 입장이다. 청소년이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자연스레 바른 언어 인식이 형성되게 하는 긍정적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아! 대한민국’의 경우 많은 히트곡을 낸 작사가 박건호 씨가 참가하는 등 곡 자체가 좋았다”며 “청소년 언어 순화 메시지를 담은 건전가요라도 곡을 잘 만들면 호응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건전가요#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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