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격돌, 화만 난 졸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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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펀치만 날린 ‘세기의 주먹왕 대결’
메이웨더, 도망만 다니다 판정승… 파키아오도 공세 대신 몸 사려
타이슨 “5년이나 기다렸는데… ”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던 사각의 링에는 허무함마저 감돌았다. 세기의 대결을 손꼽아 기다려온 복싱 팬들은 맥이 풀렸다. 2억5000만 달러의 천문학적인 대전료치고는 어이없는 졸전이었다. 국내 중계진도 “하이라이트로 편집할 만한 펀치가 없는 것 같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호텔 아레나에서 열린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키아오(37·필리핀)의 WBC·WBA·WBO 웰터급 통합타이틀전. 메이웨더는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118-110, 116-112, 116-112)을 거뒀다. 메이웨더는 48전 전승(26KO) 행진을 이어가며 로키 마르시아노가 보유한 49전 전승 기록에 1승 차로 다가섰다. 파키아오는 57승(38KO) 2무 6패.

초반 KO를 노리고 적극적인 공세로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파키아오는 몸을 사렸다. 4라운드에서 왼손 스트레이트를 메이웨더의 안면에 꽂은 뒤 세차게 몰아붙였으나 순간 스스로 뒤로 물러났다. 이후 메이웨더의 빠른 발을 잡지 못해 왼손 펀치는 번번이 허공을 갈랐다. 10라운드 이후에도 모험을 걸지 못했다. 파키아오의 트레이너 프레디 로치는 경기 전 “메이웨더가 예상외로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올 수 있다”며 맞불을 놓는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메이웨더가 자신의 스타일대로 아웃복싱을 펼치면서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경기 후 파키아오는 “3주 전 훈련 캠프에서 다친 어깨가 1주 전에 회복됐지만 오늘 3라운드에 통증을 다시 느껴 하고자 한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메이웨더도 노골적인 수비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보여준 건 어깨를 흔들며 펀치를 막는 ‘숄더롤’과 간간이 득점 펀치로 적중시킨 오른손 스트레이트다. AP통신은 “메이웨더가 경기 내내 무게중심을 뒤로 두고 도망 다니기 바빴다”고 지적했다. 12라운드 막판에는 승리를 장담한 듯 오른손을 추켜올리자 관중은 야유를 보냈다. 파키아오가 “판정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할 만큼 깔끔하지 못한 승리였다. 캐나다의 CBC스포츠는 “파키아오는 평소 600∼700회 펀치를 날리는데 이번 경기에서는 429회밖에 날리지 못했다”며 파키아오 역시 졸전에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전 헤비급 통합챔피언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은 경기 후 자신의 트위터에 “5년을 기다렸는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메이웨더는 “나는 계산적인 파이터인 반면 파키아오는 거친 스타일”이라고 반박했다. 현역 시절 메이웨더, 파키아오와 붙은 적이 있는 오스카 데라 호야도 트위터에 “미안하다. 복싱 팬들”이라고 글을 남겼다.

메이웨더는 무기력한 경기에도 1억5000만 달러(약 1611억 원)의 대전료를 챙겼다. 파키아오는 1억 달러(약 1074억 원)를 받았다. 메이웨더는 세계권투평의회(WBC)에서 100만 달러(약 10억7000만 원)를 들여 에메랄드와 순금으로 특별히 제작한 통합타이틀 챔피언 벨트까지 어깨에 걸었다. AP통신은 메이웨더가 435회의 펀치를 시도해 148개를 적중했다고 보도했다. 펀치 1회당 3억7000만 원가량을 받은 셈이다. 파키아오는 429차례의 주먹을 뻗어 81회를 적중하는 데 그친 것으로 분석됐다.

파키아오의 고국 필리핀은 이번 패배로 침통함에 빠졌다. 극장이나 체육관, 교외 광장에서 경기를 관전한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일부 시민은 재경기를 주장했다.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경기 직후 “파키아오는 진정한 국민의 챔피언이다. 그는 포인트가 아닌 명예를 위해 싸웠다. 그리고 세계인의 마음을 얻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메이웨더 주니어#매니 파키아오#허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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