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등반객 최소 17명 사망… 눈사태 속 수백명 고립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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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81년만의 대지진]봄철 등반 앞두고 1000여명 몰려
기상 나쁘고 물자부족… 구조 난항
구글 어드벤처 공동 창립자 숨져
규모 6.7 여진에 눈사태 또 발생
티베트-대만서도 지진… 공포 확산

“구조 헬기가 빨리 도착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에베레스트 산에서 죽을 겁니다. 부상자가 많고 부상 정도도 매우 심각합니다.”

26일 루마니아 산악인 알렉산드루 거반 씨는 네팔 지진 여파로 히말라야 등정로 일대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며 다급한 목소리로 구조를 요청했다. 세계 각국 탐험가들이 찾는 최고봉 에베레스트 산에서는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25일부터 대규모 눈사태가 일어나 최소 17명이 숨지고 61명이 다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수백 명이 고립됐다고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이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4월 눈사태로 네팔인 가이드 16명이 죽은 것을 뛰어넘는 최악의 참사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탐험가들이 등반 계획과 몸 상태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고봉 등정의 첫 번째 관문이다. 네팔 정부는 25일 지진 당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인근에만 등반객과 현지인 안내원(셰르파) 등이 최소 1000명 있었고 이 중 400여 명이 외국인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지진은 히말라야 등반 시즌이 시작되는 시점에 발생해 관광객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에 있던 네덜란드 산악인 에릭 아르놀트 씨는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라 텐트 문을 열었더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눈이 세 갈래로 무너져 내려와 죽기 살기로 도망쳤다”고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중국 신징보도 26일 지진 당시 히말라야 남쪽을 통해 등반 중이던 여성 등반대가 눈사태로 고립됐으며 다수가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한 여성 대원은 40여 명이 고립돼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며 부상한 대원이 누워 있는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숨진 외국인들은 눈사태 직후 산꼭대기에서 쏟아진 바위와 얼음 조각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긴급 의료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현지인들은 전했다.

히말라야에서 숨진 사람 중에는 구글의 고위 임원인 댄 프레딘버그 씨(33)도 포함됐다. 여동생 메건 씨는 26일 “오빠가 구글 직원 3명과 함께 약 20일간 에베레스트를 트레킹 중이었으며 이번 산사태로 머리를 크게 다쳐 숨졌다”고 밝혔다. 다른 직원들은 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레딘버그 씨는 2007년 구글에 입사해 무인 자동차와 구글 글라스 등을 개발하는 혁신 연구소인 ‘구글X’의 개인정보 담당 이사를 지냈다. 그는 ‘구글의 길 찾기 서비스인 구글 스트리트뷰를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와 같은 오지로도 확대하겠다’는 꿈을 안고 사내 벤처인 구글 어드벤처를 공동 창립하기도 했다. 지구 온난화를 경고하는 ‘세이브 디 아이스’ 운동 출범에도 관여했다.

그는 또 ‘시카고 PD’ ‘원 트리 힐’ 등 미 인기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활약한 인기 여배우 소피아 부시(33)의 전 남자친구로도 유명하다. 2013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약 1년간 그와 교제한 부시는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지금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고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은 슬픔만 느낀다’라고 추모했다. 구글은 프레딘버그 씨의 사망 사실을 공식 확인하고 구호 성금으로 100만 달러(약 10억9000만 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지진이 일어난 에베레스트 산기슭은 눈보라 때문에 헬기 이착륙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상 상태 악화와 의료 자원 부족에다 사상자 파악도 난항을 겪고 있어 사망자가 몇 명인지, 고립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히 알기 힘든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26일 오후 1시경엔 규모 6.7의 강력한 여진이 카트만두 동북쪽에서 발생해 에베레스트 산 주변에서도 다시 눈사태가 일어났다고 산악인들이 전했다. 인도 산악인인 아르준 바이파이 씨는 에베레스트 인근 마칼루 베이스캠프에서 통화하던 도중 “오 제길, 또 다른 눈사태가 발생했다”고 소리를 질렀고 전화기 너머로 비명소리와 눈사태가 밀려드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히말라야에서 숨진 사람도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도 카트만두에 더 큰 지진 피해가 발생한 까닭에 네팔 당국이 히말라야 피해자까지 구조할 여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히말라야에서 숨진 사람들의 시신을 실어 나르기 위한 첫 헬리콥터도 26일 아침에야 간신히 출발했다.

히말라야 중부의 안나푸르나 봉을 오르던 한국 등반팀 등 한국인 전문 산악인 20여 명도 눈사태를 만나 급하게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대한산악연맹 관계자는 26일 “눈사태 이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있던 산악대원 한 명에게서 ‘모두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연맹에 따르면 현재 히말라야에서 고봉 등정을 준비하는 국내 원정대는 장헌무 대장이 이끄는 구미산악연맹 등 모두 3개 팀이다.

한편 네팔 대지진과 비슷한 시기에 중국 시짱(西藏·티베트), 대만, 칠레 등 세계 각국에서 강도 높은 지진이 일어나 대지진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25일 오후 5시경 시짱 르카쩌(日喀則) 지역에서 리히터 규모 5.9의 지진이, 26일 오전 4시경에는 대만 동부 화롄 현 앞바다에서 규모 5.6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에 앞서 22일에는 칠레 남부 칼부코 화산이 1972년 이후 43년 만에 폭발해 인근 주민 1500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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