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전통시장 ‘대박 손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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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찾은 전통시장, 다시 가보니

전통시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1979년 이후 열여덟 해의 은둔을 떨치고 현실세계로 돌아온 ‘정치인 박근혜’가 뜨거운 민심(民心)을 확인한 곳이 경북 포항의 죽도시장이었다. 1998년 4월 재·보궐선거에 출마한 박 대통령에게 ‘근혜야 울지 마’라는 위로와 함께 선거에 보태 쓰라며 꼬깃꼬깃 접힌 1000원짜리 지폐를 쥐여준 사람들도 시장 아주머니들이었다고 한다. 험난한 정치 역정을 걸으며 힘겨워할 때 박 대통령에게 피로회복제를 쥐여주고, 우족(牛足)을 먹어야 힘이 난다고 두 손을 꼭 잡아 일으켜 주던 ‘힐링’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박 대통령은 취임 후 10차례나 전통시장을 찾았다. 단일 테마로는 지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 참여와 함께 현장 방문 행사 순위 1, 2위를 다툰다.

박 대통령 스스로도 틈만 나면 “전통시장이 살아야 서민경제가 산다”며 “전통시장을 상품화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2005년 27조3000억 원에 이르던 전통시장의 매출액은 2013년 19조9000억 원으로 떨어졌다. 이대로 방치하면 전통시장은 고사(枯死)할 운명으로 보인다.

동아일보는 쇠락하는 전통시장에 박 대통령이 생명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이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박 대통령이 다녀간 시장 10곳을 찾아 동선(動線)을 추적해봤다. 박 대통령이 현장에서 약속한 것,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원 등 사후조치가 이뤄졌는지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시장 사람들은 대체로 박 대통령의 재래시장 살리기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서울 광진구 중곡제일골목시장상인회 박태신 회장(62)은 “대통령 방문으로 ‘악성 규제’ 상당수가 해소됐다”며 “구청과 시청에 몇 번이나 찾아가도 해결되지 않던 것들이 대통령이 한 번 왔다가니까 수월하게 풀렸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대통령 방문 직후 고객 증가로 시장 매출이 적게는 4%에서 최대 200%까지, 개별 점포의 경우 최대 300% 상승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반짝 효과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재래시장 발전방안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31일 중점지원대상 특성화 시장 162곳을 선정해 발표한다.  
26일 오후 서울 광진구 중곡제일골목시장에서 건어물을 파는 한 상인이 지난 설을 앞두고 이곳을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기념사진을 들어 보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속 박 대통령 오른쪽 남성이 남편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10차례나
 전통시장을 찾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6일 오후 서울 광진구 중곡제일골목시장에서 건어물을 파는 한 상인이 지난 설을 앞두고 이곳을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기념사진을 들어 보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속 박 대통령 오른쪽 남성이 남편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10차례나 전통시장을 찾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손님 늘고 공무원도 움직여 “이만한 홍보모델 어딨나” ▼

숫자 ‘3’이 겹쳐 ‘삼겹살데이’로 불리는 3일 오후. 충북 청주시 서문시장 안 삼겹살거리에는 50m 길이로 놓인 테이블 위마다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어갔다. 서문시장상인회가 마련한 삼겹살 500kg은 2시간여 만에 동났다. 또 삼겹살거리 내 13개 업소가 1인분(200g)에 9000원인 삼겹살 가격을 이날 하루 7000원으로 할인 판매하면서 식당마다 손님들이 하루 종일 넘쳐났다.

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청주의 대표 시장 중 하나인 청주 서문시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평일이나 주말 가릴 것 없이 손님들로 북적였던 곳. 이곳 상인 중 상당수가 ‘청주의 손꼽히는 부자’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하지만 도심 공동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시장 코앞에 대형마트가 등장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2012년 청주시와 시장 상인회가 찾은 해답은 삼겹살거리 조성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 충청도 편에 돼지고기를 공물로 바치던 곳으로 기록돼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지역 토박이들은 청주가 삼겹살을 연탄불 석쇠 위에 얹어 왕소금을 뿌려 구워 먹거나 간장소스를 묻혀 구워 먹는 방식의 원조(元祖)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초기에는 홍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차츰 입소문이 나면서 청주의 명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청주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들의 발검음도 잦아졌다. 지난해 7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은 화룡점정 격. 김상돈 서문시장상인회장은 “대부분의 식당 매출이 박 대통령 방문 이후 늘었다”고 말했다. 시장 입구와 각 점포에는 박 대통령이 상인들과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박 대통령의 각오

청와대는 지난해 7월 박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취임 1년 차에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의 통합지원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공약을 대략 이행한 만큼 2년 차에는 디자인과 문화, 기술 접목 등을 통해 전통시장의 문제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그 시발점이 서문시장이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개성과 매력을 갖춘 전통시장 육성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이러한 정책 방향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로 서문시장을 꼽았다는 것.

이후 정부는 지난해 10월 28일 ‘개성과 특색 있는 전통시장 육성방안’을 수립해 발표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인가를 받은 1327개 전통시장 중 900곳에 대한 사례 조사를 실시해 △골목형 △문화관광형 △글로벌명품 등 3대 유형으로 나눠 올해 509억 원을 투입해 지원할 예정이다. 31일 1차 지원 대상 162곳을 선정해 발표하고 2017년까지 375곳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방문한 전통시장은 통영의 중앙시장이었다. 2013년 8월 남해안 적조(赤潮) 피해가 심각해 현지에서조차 “여기서 잡은 물고기를 먹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감이 팽배하던 때였다. 박 대통령은 현장에서 구입한 수산물을 청와대로 가져가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정부 지원 촉진하는 ‘박근혜 효과’

동아일보 취재진이 24일 둘러본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도 활력이 넘쳤다. 건어물점 주인 이모 씨(48)는 “불경기치고는 장사가 크게 어렵지 않아 다행이다. 영화가 흥행하니 국제시장이 붐비고, 거기 들렀다 오는 손님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하지만 자갈치시장은 시설이 너무 오래돼 빨리 뜯어 고쳐 젊은이와 외국인이 더 많이 찾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자갈치시장 상인 대표를 맡고 있는 김종진 부산어패류처리조합장은 “시장 근처 영도다리와 국제시장이 인기를 끌며 조금씩 손님이 늘자 이 기회에 다시 부산의 명소로 만들어 보자는 상인들의 의지가 강하다”며 “여러 숙원 사업이 대통령 방문 이후 탄력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이던 2012년 8월 22일 자갈치시장을 방문한 뒤 2년 만인 지난해 8월 이곳을 다시 찾았다.

당시 박 대통령은 시장 상인들과 만나 “자갈치시장을 인근 어시장과 연계해 체험관광이 결합된 해양 수산 분야의 복합문화시설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며 지원 의지를 밝혔다. 약속은 서서히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부산시 수산유통가공과에 따르면 올해부터 ‘동북아 수산식품 산업 클러스트 조성’ 사업을 본격 추진 중이다.

지역 수산업계의 숙원 사업인 ‘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은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 예산안 심의에서 통과돼 가장 탄력이 붙고 있다. 전체 사업비 1724억 원의 70%를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도 확정됐다. 2018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올해는 31억 원의 실시 설계비가 확보됐다. 20년간 자갈치시장에서 장사를 했다는 금봉달 씨(56·부산어패류처리조합 본부장)는 “정부가 자갈치시장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쓴다는 소식에 상인들도 고무돼 있다”고 했다.

전통시장과 창조경제의 접목

올해 들어 박 대통령의 전통시장 방문의 초점은 문화와 접목한 창조경제적 접근이다. 그래서 1월 27일 방문한 곳이 광주 동구 대인시장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20, 30대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점포를 집중적으로 둘러봤고. 한 허브찻집을 방문해서는 ‘창조경제’라는 글이 적힌 도자기컵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이 찻집은 이후 손님이 크게 늘어나는 등 효과를 봤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또 대인시장의 명물인 ‘한 평 갤러리’를 찾아 그림을 감상하기도 했다. 이 갤러리는 시장 내에 자리한 한 평(3.3m²) 규모 미술관 6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공간. 시장이 운영된 지 60년 만에 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방문한 것을 기념해 시장 남문에 1.2m 높이의 석조구조물을 세우려는 상인들의 움직임도 있다.

대인시장은 한때 호남 최대의 전통시장이라는 영화를 누렸지만 주변의 역세권이 이전하고 도청마저 전남 무안신도시로 옮겨가면서 속절없이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7년 대인시장 점포 350개 중 절반 이상인 189개가 철수하면서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조차 “이제 시장은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패배의식이 팽배했다. 하지만 2008년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도시 재생을 하는 신시와커뮤니티협동조합 박성현 대표(52)는 2008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인 오쿠이 엔위저 감독에게 대인시장을 야외 전시장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했다. 나이지리아 출신 전시 기획자이자 미술평론가인 엔위저는 2008년 당시 광주비엔날레 역사상 첫 외국인 감독으로 선정돼 주목받았다. 그는 현재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제로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고 있다.

문화공간과 야시장이 만나다

문화공간이 야시장과 만나면서 효과는 극대화됐다. 청년보부상으로 지칭되는 젊은이 250명은 야시장에서 각종 공예품, 먹을거리 등을 손수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광주시 등은 7년째 대인시장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주변 거점으로 활성화하는 대인예술시장 별장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정삼조 별장프로젝트 총감독(54)은 “별장프로젝트는 다른 사업과 달리 10년 지원이라는 긴 호흡을 갖고 진행돼 성과를 거뒀다”며 “대인시장이 예술이라는 주제로 자생력을 갖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대인시장의 예술성, 값싼 점포 임차료 등의 장점 때문에 앞다퉈 시장에 가게를 열고 있다. 청년들이 연 점포는 카페, 떡집, 기념품 가게, 와인바 등 다양하다. 조만간 청년들이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공간도 대인시장에 들어선다. 대인시장에 상인, 예술가, 청년들이 몰리면서 점포는 361개로 늘었다. 지금은 점포가 없어서 얻지 못할 상황이라고 한다. 상인들은 예술가, 청년들이 시장을 살려낸 ‘일등공신’이라고 치켜세웠다.

전통시장,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품다

중곡제일골목시장은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인 2013년 2월 방문해 태블릿PC를 활용하는 것을 보고 “창조경제 사례”라고 격려했던 곳. 그는 지난달 10일 이곳을 다시 찾았다. 138곳의 점포가 모여 시장을 이룬 이곳에는 박 대통령의 사진이 붙어있는 곳이 눈에 띄었다. 그사이 태블릿PC를 사용하는 점포가 70여 개로 늘었고, 어린이 놀이방을 겸한 로봇체험관이 설치됐다.

2년 전 시장 상인들의 요구사항은 5가지였다. △고객쉼터 건설 △배송센터의 인건비와 운영비 지원 △즉석 제조 가공식품 인터넷 판매 허가 △판매처에서 온누리상품권 할인 판매 △상인회에서 상가 건물 매입 시 대출금리 인하 등이었다. 이 중 ’부동산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된 대출금리 하향을 제외한 4가지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졌다.

박태신 중곡제일골목시장 상인회 회장(62)은 “이전에 구청과 시청에 몇 번이나 찾아가도 해결되지 않던 것들이 대통령이 한 번 왔다 가니까 수월하게 풀렸다”면서도 “상인들이 임차료 때문에 고생이라 그 부분이 추진되지 않은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반면 답십리시장은 상황이 좀 달랐다. 정성관 답십리시장 상인회 회장(51)은 “대통령에게 이거 달라, 저거 달라 했다가는 그 이권을 가지고 시장 상인들끼리 충돌할 수도 있어 따로 요구사항을 밝히지 않았다”며 “대통령이 온다고 해서 뭘 요구하기보다는 원래 설정한 목표에 맞춰 사업을 진행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전통시장은 서민경제의 흐름과 민심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현장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이명박,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 사진부터)이 현직 대통령 시절 전통시장을 찾아 음식을 시식하거나 과일, 채소 
등을 직접 구입하며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동아일보DB
전통시장은 서민경제의 흐름과 민심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현장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이명박,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 사진부터)이 현직 대통령 시절 전통시장을 찾아 음식을 시식하거나 과일, 채소 등을 직접 구입하며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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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체절명의 위기를 기회로 만든 아이디어들


인천 남구 용현시장은 직선거리로 1km도 채 안 되는 곳에 두 개의 대형마트가 들어서게 되면서 큰 위기에 직면했다. 2005년 당시 20대의 나이로 창업지원금 3000만 원을 대출받아 이 시장에서 두부가게를 차려 운영하고 있던 이덕재 씨(36)가 나섰다. 시장의 상권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어 상인들의 반목이 심각했던 당시 그는 통합과 위기 극복을 공약으로 내걸고 2011년 통합 상인회장에 당선됐다.

“대형마트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연세가 지긋한 상인들이 모여 주로 음식재료를 파는 전통시장이라는 종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했어요.”

이 회장은 취임식에서 문화의 개념을 도입해 손님들이 다시 찾는 시장을 만들겠다고 상인들에게 약속했다. 우선 상인회의 이사진 25명 가운데 21명을 30, 40대로 선임했다. 젊은 이사진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반영한 ‘용현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

가장 먼저 시작한 프로그램은 ‘화목한 용현시장’이었다. 매주 화 목요일 미로와 같은 시장 내 골목길 광장에서 인디밴드 등이 출연하는 게릴라콘서트, 노래자랑 같은 공연을 열었다. 매일 오후 2∼4시에는 상인과 손님들이 신청한 음악과 사연을 시장 내 스피커를 통해 들려주는 ‘용현시장 뮤직박스’도 운영한다. 남구의 지원을 받아 골목 곳곳의 천장에는 뉴스 등을 방영하는 대형 멀티비전을 설치하고 주차장 용지 2곳을 새로 확보했다. 2012년부터는 시장경영진흥원의 도움을 받아 상인들에게 친절·위생교육과 함께 마케팅 성공 사례 등을 교육하는 상인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60세 이상 주민을 ‘실버 택배원’으로 채용해 손님들이 구매한 물건을 집까지 배달해주는 택배 서비스도 도입했다.

가장 고무적인 것은 상인들의 자신감 회복

이 시장은 지난해 중소기업청이 지원하는 ‘문화관광형 육성시장’으로 선정됐다. 정보통신기술과 자생력 강화, 기반설비, 이벤트홍보사업 등에 내년까지 18억 원이 지원된다.

“대통령이 두 번이나 다녀간 시장이라는 소문이 퍼져서인지 수도권은 물론이고 충청과 영남지방에 있는 전통시장 상인회에서도 벤치마킹하기 위해 우리 시장을 다녀가고 있어요.”

기자와 함께 용현시장을 둘러보던 이 회장에게 박 대통령이 다녀간 뒤 달라진 점을 물었다. 이 회장은 “박 대통령이 시장을 방문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진 때문인지 손님이 그전에 비해 늘어난 것은 확실하지만 더 고무적인 것은 상인들이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것”이라며 “대형마트가 문을 열어 위기감을 느꼈던 상인들이 요즘에는 신명나게 물건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2013년 방문했을 때 8000원을 주고 인절미 등을 구입하며 대화를 나눴던 오복떡집을 찾았다. 출입구에는 박 대통령과 악수를 하는 장면을 인쇄한 플래카드가 여전히 걸려 있었다. 고종석 사장(70)은 “대형마트가 문을 열어 타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상인들이 서로 ‘장사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박 대통령이 태양광시설이 가동하면 다시 방문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다시 힘을 불어넣어 줬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에필로그

박 대통령이 방문한 10곳의 전통시장은 단 한 곳도 우연히 선정된 곳은 없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청주의 경우 최대 시장은 육거리시장이지만, 규모가 작아도 개성과 특색이 있는 전통시장을 찾던 박 대통령이 직접 서문시장에 가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전통시장에 가면 박 대통령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애착이 강한 곳이기도 하다. ‘기왕이면 창덕궁’(기왕이면 다홍치마와 비슷한 뜻)이라며 디자인을 예쁘게 하면 시장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전통시장 살리기 대책을 계속 내놓고 있지만 전통시장의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5년 27조3000억 원이던 매출액은 △22조5000억 원(2007년) △21조4000억 원(2010년)으로 낮아지다가 2013년 처음으로 19조 원대(19조9000억 원)로 떨어졌다. 시장 수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통시장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정부에서도 매출 감소세를 완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할 정도. 대형마트도 그렇지만 최대의 적은 온라인 상거래라고 한다.

결국 숙제는 전통시장이 스스로 어떻게 지속가능한 자생력을 갖춰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지적이다. 대통령의 방문으로 생겨난 긍정적 에너지가 추동력을 가질 수 있도록 강력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지만 결국 사람이 넘쳐나는 풍성한 시장을 만들어 가는 힘은 시장 스스로의 노력이라는 것. 스토리와 재미가 있으면서도 싸고 편리한 시장을 만들기 위한 전통시장 개조 프로젝트의 성패도 결국은 ‘같이 갑시다’ 정신에 달려 있을 것 같다.

청주=장기우 straw825@donga.com / 광주=이형주 / 부산=강성명 기자
#전통시장#대박#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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