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친서로 교착 뚫고… 16일 두 정상 통화뒤 “이젠 친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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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쿠바 국교 정상화]긴박했던 18개월 비밀협상

죄수, 캐나다, 교황, 스파이 그리고 3대의 비행기….

53년간 앙숙으로 지내온 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에 합의하기까지 비밀 협상이 18개월간에 걸쳐 진행됐다. 워싱턴포스트와 가디언 등 외신이 전하는 비화에는 뜻밖의 인물과 뜻밖의 장소가 등장한다.

첫 인물은 앨런 그로스(65)라는 죄수다. 미국 국무부 대외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의 하도급업체 직원이던 그는 2009년 12월 쿠바 아바나에서 현지 유대인단체에 불법 인터넷 장비를 설치하려다 체포된 뒤 15년형을 선고받고 쿠바 교도소에서 6년째 복역해 왔다. 2013년 집권 2기를 맞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고령의 죄수 석방을 통해 미국과 쿠바의 관계 개선을 모색해볼 것을 지시한다.

보안을 위해 최소 인원만 참여한 협상은 2개 채널에서 진행됐다. 존 케리 국무장관이 이끄는 공식 외교채널과 백악관 외교안보팀 벤 로즈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리카도 주니가 국가안보회의(NSC) 라틴아메리카 담당 선임국장 등 단 2명으로 이뤄진 비공식 채널이었다. 비공식 채널을 둔 이유는 백악관의 의지를 보여주려는 조치였다. 쿠바 측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2개의 협상팀을 꾸렸다.

카리브 해를 맞둔 양국의 협상장소는 ‘눈의 나라’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였다. 지난해 6월 이곳에서 처음 만난 양국 협상팀은 9차례에 걸친 비밀협상을 벌였다. 케리 장관은 협상 파트너였던 브루노 로드리게스 파리야 쿠바 외교장관에게 그로스 씨가 쿠바 감옥에 있는 한 관계 개선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파리야 장관은 2011년 체포돼 미국 감옥에 수감 중인 쿠바 스파이 3명과 그로스 씨의 맞교환을 요구했다. 미국 측은 그로스 씨가 스파이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했다.

협상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산타클로스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첫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올 3월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에게 쿠바 협상을 털어놨다. 교황은 즉석에서 협상 중재를 제안하고 얼마 뒤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친서를 보낸다. 교황의 중재로 10월 바티칸에서 다시 만난 양국 협상팀은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로스 씨 외에 쿠바에 20년 가까이 장기 수감 중이던 익명의 미국 스파이를 쿠바 스파이와 교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익명의 스파이는 ‘얼굴도 알 수 없는 장기수’였다. 교황청은 17일 양국 국교 정상화를 두고 “바티칸 역사상 가장 큰 성과”라고 평했다.

양국 협상팀이 추가 협상을 벌이고 있을 때 돌발 사태가 벌어졌다. 그로스 씨가 감옥에서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언론 보도가 터졌다. 그로스 씨는 가족을 통해 아바나 감옥에서의 6년에 걸친 수감생활로 몸무게가 45kg이나 빠진 데다 우울증까지 겹쳐 한계에 도달했다며 구조 신호를 보냈다.

협상에 가속도가 붙었고 드디어 12월 16일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의 첫 통화가 이뤄졌다. 통화는 45분 넘게 이어졌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진지한 대화는 처음이었다. 양국 정상 간 대화로는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최초였다.

다음 날인 17일 3대의 비행기가 카리브 해를 교차했다. 그로스 씨를 태운 비행기, 익명의 미국 스파이를 태운 비행기가 쿠바에서 미국으로 날아갔고 3명의 쿠바 스파이를 태운 비행기는 미국에서 쿠바로 날아갔다. 몇 시간 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선언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미국 쿠바 국교 정상화#미국#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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