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갈등 축소판 퍼거슨市… ‘不信의 벽’이 사태 키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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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규모 폭동사태 왜?
‘폭력 시나리오’가 실제 폭력 불러… 대배심 발표 밤으로 미룬것도 패착
첫날 건물 12채 불타고 82명 체포… 주방위군 1000명 추가로 투입
둘째날 방화-약탈은 잦아들어

흡사 전쟁과 마찬가지였던 24일 밤 미국 미주리 주 퍼거슨 시 흑인 소요 사태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경찰은 이날 하룻밤 새 12채의 건물이 불타고 82명의 시위대가 폭력 혐의로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날 시위는 올해 8월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18)의 사망 이후 퍼거슨 시내에서 이뤄진 폭력사태 가운데 가장 심각했다. 왜 그랬을까를 놓고 미국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 올 것이 오고야 만 폭력사태

총 쏜 백인 경찰 “정당한 공무집행” 25일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사살해 퍼거슨 폭동사태를 촉발시킨 경찰관 대런 윌슨(오른쪽)이 ABC방송의 단독 인터뷰에 나와 조지 스테퍼노펄러스 앵커와 이야기하고 있다. ABC뉴스 화면
총 쏜 백인 경찰 “정당한 공무집행” 25일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을 사살해 퍼거슨 폭동사태를 촉발시킨 경찰관 대런 윌슨(오른쪽)이 ABC방송의 단독 인터뷰에 나와 조지 스테퍼노펄러스 앵커와 이야기하고 있다. ABC뉴스 화면
워싱턴포스트(WP)는 25일 “당국과 언론이 대배심 결과 발표 뒤 대규모 흑인 폭동사태가 날 것을 예견하고 대비해 온 것이 시위대가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할 빌미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WP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사례로 규정하면서 “24일 밤의 폭력사태는 대규모 흥행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식의 전국적인 사용자 요청 프로그램(on-demand programming) 같았다”고 비유했다.

실제로 미 언론은 8월 브라운 사망 사건 이후 ‘다음엔 어떤 폭력사태가 나올까’ 식의 시나리오를 계속 보도해 왔다. 제이 닉슨 미주리 주지사는 17일 퍼거슨 시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경찰과 주 방위군의 시위 진압능력을 늘려 사실상 대배심에서 브라운을 사살한 대런 윌슨 경관(28)이 불기소 결정을 받을 것이라고 ‘사전 예고’한 셈이 됐다.

로버트 매컬럭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검사가 24일 오전 일찍 나온 대배심 결정의 발표 시간을 오후 8시 이후로 늦춘 것도 폭동의 한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어둠이 깔리면서 경찰은 성난 군중을 통제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지경에 놓였다”고 밝혔다. 윌슨 경관을 옹호하는 듯한 매컬럭 검사의 설명도 하루 종일 발표를 기다린 시위대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배심 결과와 시위사태는 젊은 흑인들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정보기술(IT) 기기의 파급력 덕분에 시위대는 금세 늘었다. 25일 뉴욕 맨해튼 시가지를 행진하던 흑인 청년 시위대는 “나처럼 젊은 흑인들은 SNS를 통해 시위를 조직할 힘이 있다”고 말했다.

인구 2만1000여 명 중 65%가 흑인인 퍼거슨 시는 애초부터 미국 흑백 인종 갈등의 압축판이었다는 점도 8월부터 진행된 소요사태가 극단으로 치닫는 근본적인 토대였다. 8월 이후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나서서 흑백 갈등을 치유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번 사태로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 시위는 확산되지만 폭력은 크게 줄어

미국 언론은 24일 밤부터 25일 새벽까지 이어진 첫째 날 시위에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둘째 날인 25일 시위에서는 방화 약탈 등 극한의 폭력사태가 크게 줄었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CNN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흑인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려고 하는 젊은 흑인들이 전면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날도 일부 시위대가 경찰차를 공격하는 등 과격 폭력 행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많이 차분해진 분위기 속에서 거리 시위가 밤새 이어졌다. 퍼거슨 시에서는 전날 같은 폭력시위를 우려한 닉슨 주지사가 주 방위군 1000명을 추가로 배치하면서 모두 2200명의 주 방위군이 시 곳곳에서 주요 시설을 보호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폭력행위에는 관용이 있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CNN 등은 이날 뉴욕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시애틀 등 37개 주 170개 넘는 도시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가 도로를 막고 행진하는 등 항의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한편 윌슨 경관은 이날 오후 ABC방송과 단독 인터뷰에서 대중을 향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브라운이 사망한 것은 매우 미안하다”면서도 “상대가 흑인이건 백인이건 간에 경찰로서 배운 대로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당한 공무집행 중에 일어난 일로 규정에 따른 것이란 주장이었다.

하지만 브라운 측 앨 샤프턴 목사와 벤저민 크럼프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애초부터 대배심 절차는 공정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방화범들은 브라운 지지자들이 아니다. 도시 전체를 불태우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라며 시위대의 자제를 촉구했다.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퍼거슨#폭동#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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