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감독 “훈련하고 싶게 만드는 게 감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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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日미야자키 캠프의 김기태 감독
주전 많이 빠졌으니 2015년 성적 부담 없다고?
핑계는 없다, 나무 뽑힌 곳에 새싹 자란다
LG 떠날때 당분간 복귀 힘들다 생각했는데… 받아준 구단에 내가 큰 선물 드릴 차례

일본 미야자키 휴가 시에 마련한 프로야구 KIA 훈련 캠프에서 팀을 새로 맡은 김기태 감독이 방망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스스로 훈련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게 감독 역할”이라고 말했다. 미야자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일본 미야자키 휴가 시에 마련한 프로야구 KIA 훈련 캠프에서 팀을 새로 맡은 김기태 감독이 방망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스스로 훈련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게 감독 역할”이라고 말했다. 미야자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일본 오키나와는 ‘지옥’이다. ‘야신’ 김성근 감독이 감독으로 부임한 뒤 한화의 마무리 캠프가 차려진 오키나와에선 선수들의 곡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펑고(수비 연습을 위해 배트로 공을 쳐주는 것)를 하는 김 감독과 흙 범벅이 된 채 그라운드를 구르는 선수들의 사진이 연일 인터넷에 오르고 있다.

이에 비해 KIA의 일본 미야자키 캠프는 조용하다. 고참 선수들은 한국에서 개인 훈련을 한다. 캠프에 참가한 신진 선수들의 공식 훈련도 오전 8시 반에 시작돼 오후 5시면 모두 끝난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다. 조용함 속에 활력이 넘친다. 시간은 짧지만 강렬하다. 훈련을 강요하진 않지만 선수들이 알아서 한다. 김기태 KIA 감독이 부임하면서 생긴 변화다. 20일 미야자키 휴가 시에서 만난 김 감독은 “이번 캠프는 ‘천국으로 가기 위한 훈련’이다. 내가 생각하는 감독의 역할은 선수들이 스스로 훈련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다.

타격 연습을 마친 KIA 선수들의 지친 모습이 훈련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자율훈련이 기본 방침이지만 KIA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코치들에게 ‘과외 지도’를 신청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KIA 제공
타격 연습을 마친 KIA 선수들의 지친 모습이 훈련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자율훈련이 기본 방침이지만 KIA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코치들에게 ‘과외 지도’를 신청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KIA 제공
○ “누가 첫 번째로 걸릴지 나도 궁금하다”


2012년 LG 감독으로 취임한 김 감독은 이듬해 팀을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이전까지 ‘모래알’ 소리를 듣던 LG 선수단은 모처럼 하나로 똘똘 뭉쳤다. 그의 ‘형님 리더십’ 덕분이었다.

LG 지휘봉을 잡던 시절 김 감독은 선수들을 향해 크게 화를 낸 적이 없다. 고참들을 예우했고, 어린 선수들은 기를 북돋워줬다. 그런데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김 감독이 폭발하는 순간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란 것을.

최근 KIA 분위기는 암흑기의 LG와 비슷하다. 최근 3년 연속 하위권에 머물면서 선수단은 사분오열됐고, 팀보다 개인을 앞세우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 선수들을 향해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잘못된 것은 분명히 바로잡아야 한다. 누가 첫 번째로 걸릴지, 그리고 그 선수가 어떻게 될지 나도 궁금하다.”

○ “핑계대지 않는다”

처음 LG 감독이 됐을 때와 비슷한 것은 또 있다. 당시 LG에서는 주전포수 조인성(한화)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다른 팀으로 이적했고, 승부 조작 사건으로 주축 투수 2명이 전력에서 이탈했다. 현재 KIA도 곳곳이 구멍이다. 2루수 안치홍과 유격수 김선빈은 군에 입대하고, 토종 에이스 양현종은 해외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주변에선 “성적에 대한 부담은 없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룹 고위층에서도 당장의 성적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운영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말도 들린다.

김 감독은 단호했다. “핑계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코치들에게도 없는 선수를 만들어내는 게 능력이라고 했다. 주어진 상황에서 빨리 선수들을 성장시키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나무가 뽑힌 곳에서 새싹이 자라기 마련”이라고 했다.

KIA의 새싹들은 미야자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타격 훈련은 배팅케이지 3곳, 토스배팅 6곳 등 모두 9곳에서 동시에 실시된다. 선수들의 입에서는 “악” 소리가 절로 난다. 그런데 얼굴은 모두 웃고 있다. 열심히 하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예정에 없던 휴식을 줘도 알아서 자율 훈련을 한다. 김 감독은 “이곳에서 살아남는 선수들을 내년 스프링캠프에도 데려갈 것이다. 스프링캠프에서도 생존하면 1군이다”라고 했다. 한국에 있는 고참 선수들이라고 마음이 편할 리 없다.

○ “큰 선물을 드리고 싶다”

김 감독은 평소 “부끄럽게 살지 않아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올 초 평생 낙인으로 따라다닐지 모르는 큰 사고를 쳤다. 시즌 초 갑작스레 LG 감독 자리를 내놓고 미국으로 떠난 것이다.

그는 “한동안 야구계로 돌아가기 힘들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야구를 떠나서 지낸 몇 개월이 내게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KIA가 나처럼 부족한 사람을 받아줬으니 이번엔 구단에 내가 큰 선물을 드릴 차례다”라고 말했다.

미야자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오키나와#기아#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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