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사기 딛고 ‘돌아온 현주엽’…“따뜻한 해설 하고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8일 14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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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농구 출범 후 처음 치러진 1998년 신인 드래프트. 1순위로 SK의 지명을 받은 선수는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는 자유계약에서 드래프트 제도로 넘어가는 변화기였다. 제도가 정착되기 전 이어서 모든 선수가 현장에 반드시 나와야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는 전화로 자신의 지명 소식을 전해 들었다. 16년 뒤 2014-2015시즌 신인 드래프트가 열린 17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 그가 나타났다. 선수가 아닌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으로다. '매직 히포' 현주엽(39)이 돌아왔다.

현주엽은 살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해설위원이 된 뒤 첫 일정이었다. 마침 이날 고려대 후배 이승현(22)이 1순위 지명을 받았다. 같은 고려대 선배로서 역시 1순위 지명을 받았던 현주엽은 감회에 젖었다.

그는 화려하게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첫 시즌에 신인 최초로 트리플더블(3개의 공격부문에서 10점 이상 올리는 것)을 이뤘다. 약 10년간 코트 위의 전성기를 누리며 태극마크도 달았다. 2009년 부상으로 은퇴한 뒤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굉장히 오랜만에 농구장에 왔더니 고향에 온 것처럼 설렌다"며 웃었다.

농구계로 돌아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많이 망설였다"고 했다. 목소리에서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묻어났다. 그동안 좋지 않은 소식에 연루된 것이 부담스러웠다. 지난해 음주운전으로 불구속 입건됐고 2009년 지인에게 17억 원 투자사기를 당해 소송까지 치렀다. 지난해부터 해설 요청이 들어왔지만 수차례 고사했다고 한다. "아직도 좀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너무 늦어지면 돌아오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데 대해 많이 반성했다. 밖에서 힘든 일들을 겪다보니 고향이나 다름없는 농구계가 그리웠다. 편하고 따뜻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주엽은 19일 개막하는 인천 아시아경기에 대한 기대도 남달랐다.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때 현주엽은 결승전 4쿼터 막판 동점골을 터트리며 남자농구 금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상무 소속이던 그는 금메달을 따고도 계속 군복무를 했다. 당시에는 조기제대 규정이 없었다. 그는 웃으며 "엄청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농담으로 그 때를 추억했다.

현 대표팀이 12년 만의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금메달을 딴 건 농구선수 생활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후배들도 꼭 경험해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도전에 나선 현주엽의 목표는 "따뜻한 해설자"다. 최근 독설이 인기를 얻는 유행에는 편승하고 싶지 않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선수입장에서 어떤 플레이를 하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식의 애정 어린 해설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먼저 선수로 뛰어본 선배만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 점을 토대로 따뜻한 해설을 하고 싶어요. 기대해주세요."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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