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의 메이저리그… “변화의 한 수가 필요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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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11년째 맞은 바둑리그

바둑리그는 프로기사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일요일인 14일 밤 한국기원 지하의 포스코켐텍 검토실 풍경. 왼쪽부터 김성룡 감독, 한상훈 7단, 신윤호 초단, 목진석 9단, 그리고 오른쪽 앞이 조인선 3단. 뒤쪽으로 바둑 TV 중계 부스가 보인다. KB바둑리그운영본부 제공
바둑리그는 프로기사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일요일인 14일 밤 한국기원 지하의 포스코켐텍 검토실 풍경. 왼쪽부터 김성룡 감독, 한상훈 7단, 신윤호 초단, 목진석 9단, 그리고 오른쪽 앞이 조인선 3단. 뒤쪽으로 바둑 TV 중계 부스가 보인다. KB바둑리그운영본부 제공
바둑리그 올해 예산은 34억 원. 국내 모든 바둑대회를 합친 150억 원의 20%를 넘는 매머드 대회다. 바둑리그는 프로 기사에게는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 같은 꿈의 무대이고, 한국기원과 바둑TV에는 파이를 키우는 동력이다. 개인전이던 바둑에 스포츠 개념을 도입해 2004년 출범한 바둑리그. 바둑계에 ‘드래프트’ ‘포스트시즌’은 물론이고 ‘선수’라는 용어도 정착시켰다. ‘사범’으로 불려온 일부 프로들은 반발하기도 했다. 바둑리그는 팀별 공동 연구 등을 통해 바둑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요즘 너무 안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받는다.

일요일(14일) 오후 6시 반.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 건물 1층의 바둑TV 스튜디오와 지하 검토실에 불이 켜지고 젊은 기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바둑리그는 목 금 토 오후 7시에 시작한다). 한국기원 주변 곱창 골목이 술꾼들로 시끄러워질 무렵, 한국기원에서는 승부(勝負)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 이날은 포스코켐텍과 SK엔크린의 이틀째 경기가 열렸다. 바둑리그 8개 팀 중 중위권인 두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

오후 7시 속기대국인 3국과 장고대국인 4국이 동시에 시작됐다. 관록의 목진석 9단과 신예 황재연 3단이 속기전에서, 김주호 9단과 민상연 3단이 장고대국에서 맞붙었다. 지하 검토실에서는 양 팀 감독과 선수들이 검토에 들어갔다.

SK엔크린 쪽에는 최규병 감독과 주장 박영훈 9단, 안성준 한웅규 5단, 김동호 4단, 최홍윤 2단이, 포스코켐텍 쪽에는 김성룡 감독과 조한승 9단, 한상훈 7단, 홍기표 6단, 안국현 5단, 조인선 3단이 보였다. 선수들 간에 “이렇게 뒀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저 수는 ‘까시’(까다롭다는 뜻의 바둑계 용어) 같은데….” 바둑판 위에서는 연신 돌들이 놓였다가 허물어졌다.

바둑리그 검토실이 이렇게 ‘후끈한’ 데는 이유가 있다. 승패가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 승리할 경우 개인은 400만 원이라는 수당을 받는다.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최대 2억 원의 우승 상금을 나눠가질 수 있다(상금은 기여도에 따라 나누는 게 보통이지만 균등하게 나누는 팀도 있다). 감독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1000만 원에서 2500만 원의 상금을 받는다.

때문에 프로기사들은 ‘바둑리거’가 되기를 꿈꾼다. 바둑리거가 되면 생활이 안정되고 실력도 키울 수 있기 때문. 조인선 3단은 “팀 내 고수들과 검토할 때 배우는 게 많고, 다른 팀의 고수들과 대국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많아져 실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바둑리그에 전념하는 기사도 늘고 있다. 강동윤 9단과 김지석 9단이 모델. 기전 우승경력이 적었지만 바둑리그를 통해 실력을 키워온 기사들이다. 최근에는 김세동 5단이 눈에 띄는 스타. 2군 리그에서 시작해 착착 단계를 밟아온 그는 올해 8승 2패로 다승왕 공동 1위에 올라 있다.

바둑리그는 출범 이후 바둑계의 중심이 됐다. 인적 물적자원은 물론이고 바둑계의 이런저런 화제와 뒷담화들도 빨아들였다. 최근에는 ‘초읽기 위주 구성으로 한국 바둑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비판을 받아들여 올해는 장고바둑을 늘렸다. 정동환 한국기원 기전사업국장은 “바둑리그가 시작되면서 공동연구가 활성화되고 신예들의 실력이 늘었다“며 ”선수는 물론이고 감독과 주무, 심판 등이 생기는 등 바둑계의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도 없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후원 기업이 줄고 있다는 것. 첫해 8개 팀으로 시작해 금융위기 때인 2008, 2009년에는 7개 팀으로 줄었다. 2012년 10개 팀으로 늘었으나 지난해부터 10년 전 출범 때와 같은 8개 팀이 됐다.

정체 기미를 보이고 있는 바둑리그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손종수 사이버오로 상무는 “앞으로는 무늬만 구단제인 바둑리그를 다른 스포츠처럼 기업이 선수를 뽑고 연봉계약도 하는 실질적인 구단제로 가야 한다”며 “그래야 기업 투자도 늘어나고 바둑계 파이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중국 리그는 실질적 구단제로 운용하고 있다. 바둑리그의 어느 감독은 “한중일이 통합해 아시아 바둑리그를 만들어 파이를 키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14일 밤 11시 반에 끝난 경기에서는 SK엔크린이 3-2로 승리해 5위로, 포스코켐텍은 7위로 내려앉았다.

2014 KB국민은행 바둑리그

○팀 수=8개 팀(Kixx 티브로드 CJE&M 정관장 SK엔크린 신안천일염 포 스코켐텍 화성시코리요)
○선수=64명(2군 소속 24명 포함)
○예산=34억 원
○포스트시즌=우승 상금 2억 원
○대국료=승리 400만 원, 패배 70만원

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바둑리그#예산#수당#프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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