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3>스모키의 ‘Living Next Door to Alice’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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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심하게 3도 화음 “우∼”를 잠시 날려준 후 시작되는 이 노래는, 24년간 사랑하는 여자의 옆집에서 살면서 한 번도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바보의 이야기입니다. 앨리스네 집 앞에 큼지막한 리무진이 와서 그녀를 태우고 떠나려 하는데, 이 남자는 나가보지도 않고, 어떻게든 현실을 변화시켜 보려 하지 않고 창문 밖만 바라봅니다. 그러고는 다른 여자 샐리와 통화를 하면서, 이제 앨리스가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한탄합니다. 어떻게 자기한테 떠나는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을 수 있느냐고 원망하면서도, 설혹 앨리스가 자신에게 그 이유를 말해 주려 한다 해도 듣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이거 완전히 극심한 ‘수동 공격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의 언행입니다.

수동 공격성은, 말 그대로 공격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이런 성격은 무서운 부모에게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면서 성장할 때 형성되곤 합니다. 강압적인 부모는 자식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아이는 이런 부모에게 몹시 화가 납니다. 그러나 화를 표출했다간 부모의 사랑을 잃음은 물론이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혼이 나죠. 분노를 억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분노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아직도 힘없는 어린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람들을 자신의 부모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억압된 분노는 어떤 식으로든 표출의 길을 찾습니다. 그들은 분노를 간접적으로 터뜨립니다. 드러내놓고 반대하지는 않지만 태업을 하거나, 말로는 긍정하면서 행동은 그 반대로 하는 식이죠. 수동적으로 상대방을 골탕 먹이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곤 합니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고, 반격과 복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니까요. 또한 자극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망설이고 결정을 지연시키기 때문에, 결국 타인들에게 무시당하거나 거부당합니다. 결과적으로 스스로 자해적인 상처를 받습니다. 순종하며 의존할 것이냐, 자기주장을 하고 된통 얻어맞을 것이냐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기다려 주지 못하고 이해해 주지 못하는 세상에 상처받기를 거듭하는 소극적인 햄릿인 것이죠.

사실 이러한 성격적 특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 다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특성이 일상생활에 큰 걸림돌이 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이죠.

우리 민족은 억압적 수직관계가 많은 까닭에 수동 공격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노래는 유독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1970년대 말 청춘이었던 사람들에겐 결정적인 어느 순간의 배경음악(BGM)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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