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도서관]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강신재 ‘젊은 느티나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9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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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라고 할 수 없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 욕실로 뛰어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때이면 비누 냄새가 난다. 나는 책상 앞으로 돌아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더라도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 그의 표정이나 기분까지라도 넉넉히 미리 알아차릴 수 있다.’

-강신재 소설 ‘젊은 느티나무’에서

인상 깊은 소설의 첫 문장을 떠올릴 때면 빠지지 않고 꼽히는 소설,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이 한 문장만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어떤 내용인지 한순간에 알 수 있다. 소녀가 ‘그’에게 설렌다는 것.

소설 속 화자는 열여덟 살 여고생 윤숙희다. 남편과 사별하고 딸과 살던 어머니가 대학교수와 재혼한다. 교수의 대학생 아들 현규와 이복 남매가 돼버렸지만 숙희는 현규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극적인 줄거리를 전개하기보다는 사랑이 시작되는 풋풋한 감성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소녀 취향의 로맨스물로 여겨지기도 하고, 이복 남매라는 기묘한 관계에 거부감이 생길 법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를 감각적으로 사로잡아 끝까지 끌고 간다. 자칫 유치하게 그려질 수 있는 여고생과 대학생 간의 미묘한 감정을 세련되게 묘사해 독자들의 가슴을 함께 뛰게 한다.

많은 작품을 썼지만 강신재는 이 소설 한 편으로 두고두고 기억된다.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는, 감각을 자극하는 사랑의 감정에 독자들이 공감하면서 함께 설레기 때문일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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