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예술에 가구의 기능을 입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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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佛 한인작가 훈 모로 씨 포스코미술관서 현대예술가구 展
20여년간 파리서 실내디자이너로 근무… 2014년 전업작가 전향 본격 활동
“조각-미술-디자인 경계 넘는 작품 꿈꿔”

알프스산맥의 깎아지른 절경에 영감을 받아 만든 ‘돌로미티 1’(2018년)에 앉은 작가 훈 모로. 그는 “실내 가구에서 그치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녹아들 수 있는 대형 작품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싶다”고도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알프스산맥의 깎아지른 절경에 영감을 받아 만든 ‘돌로미티 1’(2018년)에 앉은 작가 훈 모로. 그는 “실내 가구에서 그치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녹아들 수 있는 대형 작품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싶다”고도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탈리아 돌로미티산맥을 묘사한 뾰족한 봉우리와 금빛 계곡은 수묵으로 그린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연상시켰다. 너비 1m 남짓한 오크 원목 오브제의 표면은 먹(墨)을 깊숙이 머금어 칠흑처럼 어두우면서도 단단한 나무의 결을 자연스럽게 내비쳤다. 투명한 햇살이 쏟아지는 웅장한 산맥 아래 선 듯한 착각에 빠져 한참을 매료돼 있을 때, 작가 훈 모로(한국명 전훈·50·여)가 작품에 척 걸터앉으며 말했다. “앉아 보실래요? 보기보다 편하답니다!”

훈 모로의 작품은 미술품인 동시에 가구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2010년대 이후 미주와 유럽에서 조소 예술의 한 분야로 부상하고 있는 현대 예술 가구를 선보인다. 그가 신구상주의의 창시자 피터 클라젠(83)과 함께 ‘인간∞자연’을 주제로 18일부터 서울 강남구 포스코미술관에서 첫 국내 전시회를 연다.

“자연의 재료로 작품을 만들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촉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누구나 직접 만지고 사용하며 예술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꿈꿉니다.”

그의 가구는 뾰족한 바위와 거대한 산맥, 자연 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것들이다. 여기에 보석세공의 화려함까지 갖췄다. 이번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는 ‘시선의 경청’ 연작 또한 그의 작업 세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밤하늘에 빛나는 보름달과 별을 그린 회화를 연상케 하는 이 작품을 조심스럽게 열면 수납장으로서의 쓰임새가 드러난다. 미술비평가 호리아 마클루프는 훈 모로를 두고 “자연이 이룩한 놀라운 업적을 가구로 번역하려는 기발한 몽상가”라고 칭했다.

훈 모로는 오크나무를 바탕으로 금박, 견사, 네오프렌 등 다양한 부재료를 조합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낸다. 사진은 ‘그림자 빛살’(2016년). 포스코미술관 제공
훈 모로는 오크나무를 바탕으로 금박, 견사, 네오프렌 등 다양한 부재료를 조합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낸다. 사진은 ‘그림자 빛살’(2016년). 포스코미술관 제공
훈 모로는 프랑스 부르고뉴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나무를 깎고 흙을 주물러 청동 주물을 만드는 등 작업 과정 전체를 손수한다. 하나의 디자인은 최대 8개의 에디션까지만 제작된다. 가구의 속성을 갖고 있지만 모든 작품은 조소 예술품이라는 점에서 ‘럭셔리 가구’와는 구분된다. 그는 “가구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조각 작품에 가구로서의 ‘유용성’이 더해진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조소학과를 졸업한 그는 파리 에콜카몽도에서 유학을 한 뒤 20여 년간 실내 디자이너로 일했다. 프랑스 유명 건축회사 ‘빌모트&아소시에’의 실내 디자인팀을 이끌며 중동의 왕궁과 고급 호텔의 인테리어를 도맡기도 했다. 그랬던 그는 2014년 돌연 회사를 나와 예술가로 전향했다.

훈 모로는 오크나무를 바탕으로 금박, 견사, 네오프렌 등 다양한 부재료를 조합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낸다. 사진은 ‘평형의 바위’(2017년). 포스코미술관 제공
훈 모로는 오크나무를 바탕으로 금박, 견사, 네오프렌 등 다양한 부재료를 조합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해낸다. 사진은 ‘평형의 바위’(2017년). 포스코미술관 제공
“‘자유로움’ 때문이었죠. 조각과 미술, 디자인의 경계를 넘는 나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실내 건축가 시절부터 노트에 그려놨던 수많은 레퍼토리를 작품으로 만들면서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섬세하게 뻗은 선과 모노크롬(단색화)의 미묘한 색조 변화, 금방이라도 비상할 것 같은 유려한 자태가 응축돼 있다. 동서양의 분위기가 오묘하게 조화돼 있는 그의 가구는 파리와 뉴욕에서 컬렉터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작가로서의 바람요? 내 작품이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하며, 추억이 쌓이고,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11월 20일까지.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훈 모로#포스코미술관#현대예술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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