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서도 강단서도 들을 수 없는 틈새의 역사 기대하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9월 ‘한뼘 한국사’ 출간한 젊은 역사학자 모임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신진 역사학자 모임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는 그들의 이름처럼 “역사는 다양한 해석과 시선이 존재할 때 생명력을 가진다”고 강조한다. 7일 서울 종로구 푸른역사 사옥에 서 만난 소속 연구자 문미라 임동민 최보민 김동주 씨.(왼쪽부터)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신진 역사학자 모임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는 그들의 이름처럼 “역사는 다양한 해석과 시선이 존재할 때 생명력을 가진다”고 강조한다. 7일 서울 종로구 푸른역사 사옥에 서 만난 소속 연구자 문미라 임동민 최보민 김동주 씨.(왼쪽부터)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말년(末年)이와 모지리(毛知里), 소똥(牛屎)이.’

조선왕조실록은 흔히 왕과 고관대작의 권력다툼을 비롯해 주요 정치적 사건들을 다뤘을 거라 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실록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와 같은 노비들의 이름도 꽤 등장한다. 이런 이름들은 조선 사회의 어떤 면을 반영하고 있는 걸까.

지난달 출간된 ‘한뼘 한국사’(푸른역사·사진)는 여타 역사책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주제가 가득하다. 광복 직후 월남한 자신의 할아버지 삶을 통해 굴곡진 대한민국 현대사를 솜씨 좋게 풀어내기도 하고, 여전히 사회적 편견의 대상인 성소수자를 추적한 연구도 있다.

때론 당돌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책은 최근 주목받는 젊은 역사학자 모임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가 엮었다. 역사 연구는 기존 인식이나 견해에 대한 도전이 없다면 ‘고인 물’이 될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흐르는 물이 되고자 하는 이 모임의 신진 학자 4명을 7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났다.

‘만인만색…’은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역사 전공 대학원생과 신진 연구자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결국 국정교과서 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오히려 이들은 ‘역사학의 위기’를 뼈저리게 느낀 뒤 조직적인 활동에 나섰다.

“역사학계에선 기존의 견해를 뒤집는 관점과 새로운 인물·단체에 대한 발굴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어요. 그러나 시민들에게 전달되는 역사는 교과서 속 정답만을 강조한 독점적인 해석뿐이었죠. 젊은 학자들이 직접 다양한 역사의 모습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김동주 고려대 한국사학과 석사·만인만색 공동대표)

연구자 50여 명이 참여한 ‘만인만색…’은 기존 학술단체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팟캐스트팀’이나 ‘출판콘텐츠팀’ 등을 구성해 시민들과 직접 소통에 나섰다.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매주 진행하는 팟캐스트 ‘역사共작단’은 매회 조회수 수만 건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최대 팟캐스트 포털 ‘팟빵’에서 교육 분야 인기순위 10위권에 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 역사 분야에서 대중성은 설민석, 최태성 씨처럼 입시학원 강사들의 활약이 훨씬 파급력이 높다. “요식업에 비유하자면, 그분들은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두루두루 입맛에 잘 맞는 프랜차이즈 식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원로학자들은 5성급 특급호텔 레스토랑으로 볼 수 있죠. 저희는 요리학교를 다닌 뒤 이제 막 창업한 골목식당 정도랄까요. 어느 정도 깊이가 있지만 문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전문성에 기반한 대중성’이 강점이라고 봅니다.”(임동민 고려대 한국사학과 박사 수료)

이 책의 부제는 ‘한국사 밖의 한국사’다. 평범한 사람들이나 미신·근친혼 등 금기시된 주제, 한반도의 국경선 경계에 놓였던 존재들처럼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뤘던 주제들이 많다. 앞으로 다채롭게 펼쳐져야 할 한국 역사학계의 미래가 엿보인다.

“1925년 ‘예천 형평사 공격 사건’은 본질적으로 당시 가장 하층민으로 여겨진 백정과 머슴들의 다툼이었습니다. 이른바 ‘을들의 전쟁’이죠. 지금 우리 사회도 최저임금이나 난민 등의 이슈에서 약자 간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어요.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입니다.”(최보민 성균관대 사학과 박사 수료)

“6·25전쟁은 이승만과 김일성, 스탈린의 전쟁이었을까요. 당시 전쟁 속에서 고통받았던 평범한 시민들의 삶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문미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박사 수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한뼘 한국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