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득이’ 와 ‘먹깨비’의 추억… 2040, ‘액체괴물’에 푹 빠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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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까talk]키덜트의 새 쉼터 ‘슬라임 카페’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슬라임 카페 ‘릴리데이지’를 찾은 어머니와 딸이 슬라임을 넓게 펼치며 놀고 있다. 슬라임은 점성을 달리해 만들 수 있고 플라스틱 조각을 섞거나 작은 인형을 안에 담아서 투명한 병에 장식하기도 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난달 31일 서울 마포구 슬라임 카페 ‘릴리데이지’를 찾은 어머니와 딸이 슬라임을 넓게 펼치며 놀고 있다. 슬라임은 점성을 달리해 만들 수 있고 플라스틱 조각을 섞거나 작은 인형을 안에 담아서 투명한 병에 장식하기도 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 ‘아, 이 쫀득한 것은 무엇인가, 이 알록달록하고 부드럽고 잘 늘어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왠지 반가운 느낌이 손바닥에서 팔을 타고 올라왔다. 어슴푸레하고 희미하게 뇌 속의 뭔가를 자극하는 감각이다. 서울 마포구의 ‘슬라임’ 카페 ‘릴리데이지’에서 1일 기자는 얼토당토않게도 백석(1912∼1996)의 시 ‘국수’를 떠올렸다. 말랑말랑하고 잘 늘어나는 장난감 슬라임과 국수는 묘하게 닮았다. 찰지면서도 심심한 느낌이 푸근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말이다. 카페 직원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해 봤다. 양푼에 물풀을 붓고 ‘액티’(베이킹소다를 물에 녹인 것이라고 직원이 설명했다)를 넣은 뒤 주걱으로 젓는다. 콘택트렌즈 세척액을 조금 넣고 다시 저으면 기본 슬라임이 완성된다. 여기에 원하는 향이나 색소, ‘토핑’(슬라임 안에 넣도록 만들어진 구슬 모양 등의 작은 플라스틱. ‘파츠’라고도 한다)을 더하면 된다. 》
 
○ “‘키덜트’족이 눈치 안보는 시대”

40대라면 말캉말캉한 촉감에, 던지면 벽에 달라붙던 어릴 적 장난감 ‘먹깨비’가 떠오를 것이다. 20, 30대라면 풍선 속에 녹말가루가 들어있는 ‘만득이’를 추억할 수도 있다. 슬라임은 유행한 지 좀 된 아이들 장난감이지만 최근 아이들을 넘어 ‘키덜트’족의 놀잇감으로 떠올랐다. 기자가 방문한 ‘릴리데이지’ 카페도 성인끼리 오는 이들이 전체 손님의 20%가량 된다고 했다. 이날도 20대 남녀 커플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때 문방구에서 파는 ‘액체괴물’이 있었거든요. 그것과 같아요. 추억도 떠오르고, 아무 생각 없이 만지작거리고 놀면 한두 시간이 금방 갑니다. 아이들만 갖고 놀기에는 아까운 아이템이죠.”(황은선 씨·21)

“보기에도 예쁘고 이렇게 슬라임에 토핑을 많이 넣으면 주무를 때 ‘빠지직’ 하고 크게 소리가 납니다. 독특한 쾌감이 있지요.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을 모두 자극하는 장난감이에요.”(김예찬 씨·21)

슬라임은 점성을 달리해 만들 수 있고, 플라스틱 조각을 섞거나 작은 인형을 안에 담아서 투명한 병에 장식하기도 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슬라임은 점성을 달리해 만들 수 있고, 플라스틱 조각을 섞거나 작은 인형을 안에 담아서 투명한 병에 장식하기도 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황 씨는 “풀이나 토핑을 따로 사서 자신만의 슬라임을 만들고 노는 친구가 적지 않다”고 했다. ‘다 큰 어른이 뭐하는 짓’이냐고?

“사람은 몰두하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때 안정감과 쾌감을 느낍니다. 슬라임을 갖고 노는 건 이 같은 ‘자기 통제’ 느낌과 관련이 있어요.”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손으로 쉽게 변형할 수 있는 슬라임의 특성이 스트레스를 낮춰 준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에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상실감과 스트레스를 장난감으로 푸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슬라임뿐만이 아니다. 유튜브에서는 계란 모양의 초콜릿 속에 장난감이 들어있는 과자를 개봉하면서 어떤 장난감이 나오는지 계속 보여주는 콘텐츠도 인기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은 어른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별로 없다”며 “슬라임 카페는 키덜트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와 원하는 걸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 안전하게 갖고 놀려면…

슬라임 카페가 성업 중이지만 안전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슬라임을 만들다가 손이 빨갛게 변했다거나 피부염이 생겼다는 이들도 있다. 슬라임이 젤 같은 특성을 갖게 하기 위해 첨가하는 물질인 붕사도 문제가 된다. 붕사는 물에 녹으면 강한 염기성을 띤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붕사는 만진다고 해서 바로 탈이 나지는 않지만 피부가 민감한 이들은 장시간 만지면 피부가 붓거나 빨갛게 된다”고 말했다.

상당수 슬라임 카페는 붕사 대신 렌즈 세척액을 넣어 슬라임을 만들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는 붕사가 없을까. 이 교수는 “미국에서 만드는 렌즈 세척액에는 붕산이나 붕사를 보존제로 소량 첨가하지만 그 자체로 인체에 위험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슬라임을 만들며 여러 화학물질이 섞이면 서로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는 알 수 없다. 이 교수는 △슬라임을 맨손으로 너무 오래 갖고 놀지 말고 △슬라임을 만진 손을 입에 넣거나 눈을 만지지 말고 △놀 때 비닐장갑을 끼는 게 좋다고 권했다.
 
조종엽 jjj@donga.com·신규진 기자
#슬라임#카페#키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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