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36〉미묘하고 복합적인 맛의 성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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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 초밥
성게 초밥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으악! 미안하지만 썩은 진흙 같아”라며 캐나다 친구인 웬디가 소리쳤다. 캐나다 서부 앨버타에서 태어난 그는 바다를 본 것도, 해물을 먹어본 것도 나이가 꽤 든 후라고 했다.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일본 음식을 먹어 보고 싶어 하는 그를 스시(초밥) 전문 레스토랑에 데려가 스시와 사시미(회)를 주문해 주었다. 그중 가장 비싼 성게스시를 먹고 하는 말이었다.

마치 에일리언처럼 괴상하게 생긴 성게는 정말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극과 극을 달리는 음식이다. 미식가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요즘에는 푸아그라와 트뤼플, 참치의 뱃살 부분인 도로와 더불어 성게도 최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내가 일했던 뉴욕 프렌치 레스토랑 프로방스에서는 1789년 7월 14일 프랑스혁명을 기념하는 만찬이 매년 열렸다. 전채 메뉴로 그날 잡은 성게를 쟁반에 가득 담아 웨이터들이 쉴 새 없이 나른다. 얼음과 다시마를 펼치고 금방 먹기 쉽게 구멍 뚫어 준비한 성게를 레몬즙만 뿌려 먹는다.

미슐랭 3스타 프렌치 셰프인 피에르 가니에르는 “쌉싸래하면서도 달짝지근하고 훈제한 것 같은 향에 헤이즐넛과 꿀이 가미된 아주 미묘하고 복합적인 맛이다. 식감은 부드럽고 매우 섹시하다”라고 표현했다. 정말 복합적인 표현이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표현으로 내 친구 웬디의 ‘썩은 진흙맛’과는 매우 비교된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알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성게를 채집하는 일은 나에게 스포츠였다. 보통 검은색을 띠는 것과는 달리 오키나와 성게는 오렌지색 몸통에 바늘끝 부분이 흰색으로 맛은 달고 부드럽게 흐른다. 한나절이면 양동이를 쉽게 채울 수 있었다. 껍데기를 깨고 오렌지색이 도는 부분을 꺼내 병에 담아 시장에 가져가면 25센트나 50센트 정도를 받았다. 당시 오키나와는 미국 정부의 지배로 달러로 모든 거래를 하던 시절이었다. 팔고 남은 것을 집에 들고 가 갓 지은 흰밥에 수북이 얹어 먹었다. 그렇게 고급 음식이었는지 당시엔 생각도 못 했지만, 간장 몇 방울 넣어 비비면 버터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촉감과 맛에 우리 형제들을 매일 바다로 향하게 만들었다.

1980년대 초 남미 여행 중 안데스산맥을 내려오면서 페루 전통시장에서 성게를 발견하고 놀랐다. 각종 해물과 야채, 성게까지 곁들여진 샐러드에 감격할 정도였다. 세비체란 요리의 환상적인 첫 경험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세비체를 다시 만났다. 뉴욕에서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의 투자로 일본인 셰프 이름을 딴 ‘노부’라는 식당이 문을 열었는데, 일본 요리와 페루 요리가 섞인 퓨전을 선보여 세계적인 유행을 일으켰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방문한 제주도에는 전복죽과 흑돼지, 옥돔, 말 육회 등 다른 도시에서는 먹기 힘든 요리들이 많았다. 특히 바닷가 근처 해녀의 집에서 성게를 넣고 끓여 주는 성게미역국이 일품이었다. 금방 잡아 왔다며 성게 껍데기를 열어주는 해녀 할머니의 모습은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내가 제주도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머구리’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오 키친’ 셰프
#성게#성게스시#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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