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17> 단풍나무

옛 사람들은 단풍나무를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 왕의 공간에 즐겨 심었다.
옛 사람들은 단풍나무를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 왕의 공간에 즐겨 심었다.
단풍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단풍나무는 잎과 열매를 함께 강조한 이름이다. 단풍(丹楓)의 ‘단’은 붉게 물든 잎을, ‘풍’은 바람에 날려가는 열매를 강조한 것이다. 단풍나무처럼 나무의 이름이 잎과 열매를 함께 강조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

단풍나무의 잎은 결코 붉게만 물들지 않는다. 더욱이 사람들은 붉게 물들지 않는 나무의 잎마저 ‘단풍들었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단풍나무의 붉은 잎은 모든 나뭇잎의 물든 상태를 대표한다. 나뭇잎은 비가 적당히 오거나 일교차가 클수록 아름답다. 단풍나무의 물든 모습을 ‘풍금(楓錦)’, 즉 ‘단풍잎의 비단’이라 부른다. 단풍나무는 ‘산해경(山海經)·대남황경(大南荒經)’에 따르면, 황제(黃帝)가 치우(蚩尤)를 죽인 다음 그 형틀을 버린 것이 변하여 생긴 나무다.

중국의 왕들은 단풍나무를 아주 좋아했다. 한나라 때에는 왕이 거처하는 곳, 즉 신(宸)에 단풍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풍신(楓宸)’은 왕이 사는 곳을 의미한다. 궁전의 섬돌에도 단풍나무를 즐겨 심었다. 궁궐을 ‘풍폐(楓陛)’라 부르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을의 금강산을 일컫는 ‘풍악(楓岳)’과 김영랑의 ‘오메 단풍들겄네’는 단풍의 아름다움을 극찬한 사례다. 중국 임방(任昉)이 편찬한 ‘술이기(述異記)’에 따르면, 중국 남쪽 지방에서는 단풍나무로 만든 풍자귀(楓子鬼)가 있었다. 풍자귀는 오래된 단풍나무로 만든 인형이었다. 이 인형을 ‘영풍(靈楓)’, 즉 신령스러운 단풍나무라 불렀다. 무당들은 신령스러운 기운을 얻기 위해 영풍을 지니고 다녔다.

중국 구이저우(貴州)성 동남부 충장(從江)현의 먀오(苗)족은 단풍나무를 우주목으로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단풍나무가 성스러운 존재였다. 이들은 큰 제사인 구짱제(고贓節)에 소의 뿔을 단풍나무로 묶었으며, 조상의 영혼이 깃들었다고 믿는 북도 단풍나무로 만들었다. 아울러 이들은 집을 지을 때 가운데 기둥도 단풍나무를 사용했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이유는 종족 번식 때문이다. 단풍나무는 바람을 만나야만 종족을 번식시킬 수 있다. 단풍나무가 바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체의 삶도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아야 행복하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단풍나무#단풍#바람#종족 번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