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새로움 넘쳐나는 외식 트렌드… “元祖가 오히려 새롭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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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박홍인의 미식견문록
국내서 오래된 양식당 6곳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양식당은 어디일까. 새로움으로 넘쳐나는 외식 트렌드의 최전선을 취재하던 중 문득 궁금증이 떠올랐다. 취재 결과 1924년 조선호텔에 문을 연 ‘팜코트’를 한국 최초의 양식당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많았다.

‘나인스 게이트 그릴’의 전신으로 개장 10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식당은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시작해 변화를 거듭하다 최근 재개관을 했다. 세련된 변모가 좋기도 하지만 오래된 익숙함을 잃었다는 섭섭함도 솔직히 감출 길 없다.

물론 무조건 ‘가장 오래된 것이 최고’라고 외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새로움과 세련됨으로 무장한 요즘 식당들의 개점 러시와 젊은 스타 셰프에 집중되는 대중매체의 관심 속에서 오래된 원조의 존재는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새롭다. 20세기에 시작해 21세기에도 건재한 그들의 시간을 맛보기에 딱 좋은 계절, 가을을 맞아 오래된 양식당 6곳을 소개한다.



국내 최초 로드숍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건재함, ‘라 칸티나’(1967년)


둥근 아치형 구조의 창문과 조각상 등 고풍스러운 멋이 가득한 ‘라 칸티나’의 내부 모습. 바앤다이닝 제공
둥근 아치형 구조의 창문과 조각상 등 고풍스러운 멋이 가득한 ‘라 칸티나’의 내부 모습. 바앤다이닝 제공
서울 을지로 도심 한복판 평범해 보이는 빌딩 지하로 내려가면 마치 시공간을 거스른 듯한 ‘라 칸티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둥근 아치형 구조의 창문 장식, 붉은 벽돌, 조각상, 대비를 이루는 블루 테이블보와 핑크색의 냅킨까지. 50년 된 업력을 조용히 말해주는 내부 공간에는 고풍스러운 멋이 가득하다.

문을 연 뒤 한동안 라이브 공연도 열리곤 했다. 심수봉 씨가 파트타임으로 노래를 불렀고 세샘트리오, 이동원 씨도 거쳐 갔다. 1981년 ‘내자호텔’의 총지배인과 당시 유일한 한국인 지배인이었던 이재두 씨가 이곳을 인수했고, 이탈리아계 미국인 셰프가 주방을 맡아 본격적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거듭났다.

재료 수급이 워낙 어려웠던 때라 치즈, 소시지 등을 직접 만들었다. 제면기를 구할 수 없어서 직접 만들었는데, 당시 들어간 비용이 차 한 대 값이었다고 한다. 그 정성과 맛이 통하면서 주한미군사령관이 취임을 하면 꼭 방문하는 장소가 되었고, 정·재계 인사, 금융권 임원 등이 단골을 이뤘다.

큰 변화 없이 고수한 가격 덕에 문턱이 낮아지면서 요즘은 젊은 고객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오랜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주방과 홀 모두 기본 10년 이상 된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30년을 근무한 임승환 지배인은 “라 칸티나에는 제 젊음이 녹아있다. 부모님 손잡고 오던 학생들이 결혼을 하고 자녀들과 함께 와서 인사를 나눌 때면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대와 형편에 따라 사라진 메뉴도 있지만 오픈 때부터 인기 있던 메뉴는 대부분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스파게티 봉골레’는 접시 위에 푸짐하게 쌓아 올린 중합 사이로 자작하게 국물이 담겨 있는 점이 독특하다. 처음부터 국물이 많았던 건 아닌데 신선한 조개에서 우러나온 개운한 국물 맛이 뛰어나 손님들이 요청하면서 지금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백 년의 사랑처럼 백 년 가는 공간으로, ‘촛불 1978’(1978년)

촛불1978의 열대과일을 올린 ‘망고무스’
촛불1978의 열대과일을 올린 ‘망고무스’
남산 케이블카가 시작되는 곳에 돈가스 집과 산채 비빔밥 집들 사이로 웅장하고 세련된 건물의 레스토랑이 우뚝 서 있다. ‘촛불1978’은 40여 년 전 문을 연 경양식 레스토랑 ‘셉템버’가 그 전신으로 2, 3대 인수자를 거쳐 장경순 대표가 1993년 인수했다. 이후 본격적인 ‘프러포즈 전문’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알렸다.

테이블 8개 남짓의 작은 레스토랑이었지만 여기서 탄생한 커플이 100만 쌍이 넘는단다. 야구선수 이승엽, 연예인 션과 정혜영 부부도 이곳에서 프러포즈 시간을 가져 화제가 됐다. 하지만 김남인 홍보실장이 기억하는 특별한 순간은 따로 있다.

“여기서 프러포즈를 받아 결혼한 한 어머니가 사위 될 분에게 딸에게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며 대신 예약한 적이 있어요. 백 년의 사랑을 백 년 가는 공간에서 지켜가고 싶다는 저희의 바람이 이루어진 셈이죠.”

2014년엔 1년이 넘도록 과감히 문을 닫기도 했다. 노후한 건물을 아예 4층 규모의 건물로 새로 짓기로 한 것. 그렇게 지어진 새 건물의 1층엔 ‘1978 테라스’라는 이탈리안 비스트로를 운영하고, 프러포즈 레스토랑의 명맥은 2, 3층에서 예약제로 이어가고 있다.

남산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별실에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실내 모든 조명을 끄고 15분간 오직 촛불로만 실내를 밝히는 ‘촛불 타임’의 전통도 유지된다. 신메뉴를 꾸준히 개발하고 있지만, 오랜 시간 선보여온 스위스식 퐁듀만큼은 이어갈 예정이다.



호텔 프렌치의 자존심을 지키다, ‘콘티넨탈’ (1978년)


서울신라호텔이 1978년 개관과 동시에 선보인 프렌치 레스토랑 ‘콘티넨탈’은 오픈 이래 정통 프렌치를 표방해왔다. 창밖으로는 23층 호텔 맨 꼭대기 층에서 빼어난 장관을 볼 수 있다. 원래 내부는 베르사유 궁전을 염두에 두고 꾸몄으나 2013년 모던한 모습으로 새 단장을 했다. 또 식사 시간이 길고 무거운 클래식 프렌치의 옷을 벗고, 식재료의 맛을 살려 세련되게 담아내는 컨템퍼러리 프렌치로 갈아입었다.

20년간 신라호텔의 주방을 지킨 윤준식 책임주방장은 “고객 앞에 하나의 메뉴를 선보이기까지 수십 번 접시에 담아보고 새벽까지 연구할 때도 많았다. 오랜 시간 진정한 맛을 고수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그런 셰프로 기억되고 싶다”며 소감을 밝혔다.

최근엔 프랑스 재료와 한국 재료가 만난 메뉴를 연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유자 자몽 레몬 등 시트러스로 양념한 동해 꽃새우 타르타르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페트로시앙 캐비아를 곁들이거나, 제주산 애플망고와 셔벗 크림을 초콜릿에 담아낸 디저트가 대표적이다.

“정통은 고루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창의적일 수 있죠.”

윤 주방장은 한국적인 식재료와 풍미를 접목해서 한국을 대표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의 면모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요리문화의 가교 역할을 하다, ‘일폰테’(1987년)


1987년 서울 중구 밀레니엄 서울힐튼이 개관할 때 같이 문을 연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폰테’의 내부 모습. 일폰테는 이탈리아어로 ‘다리(The Bridge)’라는 뜻이다. 바앤다이닝 제공
1987년 서울 중구 밀레니엄 서울힐튼이 개관할 때 같이 문을 연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폰테’의 내부 모습. 일폰테는 이탈리아어로 ‘다리(The Bridge)’라는 뜻이다. 바앤다이닝 제공
밀레니엄 서울힐튼이 개관하며 오픈한 ‘일폰테’는 국내 호텔 최초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호텔업계에서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대세였던 까닭에 ‘일폰테’는 국내에 이탈리아 식문화를 소개하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삼면이 바다로 이뤄진 지리적 특성이나 건강을 중시하는 식문화가 우리와 무척 닮아 있어 이탈리아 요리가 쉽게 녹아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개관 멤버로 호텔의 식음료 서비스를 총괄하는 홍석일 상무가 그때로 돌아간 듯 힘줘 말했다.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드물었던 당시 김형규 정찬대 셰프 등 유명 셰프 대부분이 이곳을 거치며 ‘이탈리안 사관학교’라는 별칭도 얻었다.

개관 때부터 지금까지 외국인 손님이 60% 수준의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만큼 비즈니스 미팅이 많다는 의미로 전통을 유지하는 비결로는 ‘정통성과 친절함’을 꼽는다.

‘일폰테’의 성격을 꼭 닮은 메뉴를 꼽자면, 이 곳의 대표 메뉴인 ‘콰트로 피자’다. 해산물과 채소, 네 가지 종류의 치즈, 햄, 살라미를 고루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직사각형 피자는 신선한 재료 간의 조화는 물론 각자 취향에 맞는 맛을 즐길 수 있어 남녀노소에게 인기가 많다.



추억을 짓는 부엌, ‘라 쿠치나’(1990년)

라쿠치나의 ‘볼로네제 파스타’와 ‘까로짜(Carrozza)’
라쿠치나의 ‘볼로네제 파스타’와 ‘까로짜(Carrozza)’
이탈리아어로 ‘부엌’이라는 의미의 ‘라 쿠치나’는 개인이 운영하는 국내 이탈리안 레스토랑 1세대로 꼽히는 곳이다. 개인 레스토랑이 많지 않던 시절, 장세훈 대표가 어머니가 운영하던 갤러리 건물 지하에 1990년 문을 열었다.

셰프를 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어렵게 현지인 셰프를 소개 받아 첫 포문을 열었고 이후에는 호텔 주방장 출신도 여럿 다녀갔다. 대중에게는 김형규 최현석 셰프가 거쳐 간 곳으로 유명한데 27년의 역사만큼 다녀간 이들이 어디 그뿐일까.

현재 주방을 맡고 있는 김병주 셰프는 10년 전 사원으로 시작해 지난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오래된 레스토랑은 자칫 고루하리라는 선입견이 있을 수 있지만,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오히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곳이에요. 다른 곳에서 경험을 한 많은 친구들이 다시 돌아오는 이유도 아마 타협하지 않는 기본기 중심의 주방문화 때문이 아닐까요.”

지난해 한 차례의 메뉴 개편이 있었지만 27년간 유지해온 메뉴 상당수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통모차렐라를 튀겨 토마토소스, 엔초비 크림소스와 곁들여내는 ‘까루짜’, 수제 탈리아텔레(길고 얇은 리본 파스타)에 진득한 미트 소스를 곁들인 ‘볼로네제 파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변화도 있었다. 1층에는 연구개발(R&D) 팀이 개발한 수프, 빵 등을 구매할 수 있는 ‘그로서란트’를 마련했고, 코스 메뉴에는 최신 식재료나 조리기법도 간간히 녹여내고 있다.



사람을 생각하는 오너 셰프의 뚝심, ‘라미띠에’(1999년)


라미띠에의 가지스튜와 바닷가재를 곁들인 ‘비시스와즈(Vichyssoise·차가운 감자 수프)’
라미띠에의 가지스튜와 바닷가재를 곁들인 ‘비시스와즈(Vichyssoise·차가운 감자 수프)’
프렌치 레스토랑 ‘라미띠에’는 1세대 ‘오너 셰프’ 레스토랑으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흔해진 단어이지만 당시만 해도 이는 고사하고 파인 다이닝 시장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었다. 그런 시기 서승호 셰프가 ‘프렌치 오트퀴진(Haute Cuisine)’을 표방한 원테이블 레스토랑으로 ‘라미띠에’의 문을 열었다.

지금의 장명식 셰프가 인수한 것은 2006년. 10년 넘게 호텔 주방을 종횡무진했던 그는 인수 제안을 받고 이곳의 2대 오너 셰프가 됐다. 100% 예약제로 런치와 디너 코스를 요리하며 두 달 주기로 메뉴를 바꾸는 시도는 당시로서는 과감한 도전이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은 부모님 손을 잡고 왔던 초등학생이 청년이 되어 찾아오는 곳이 됐다.

스스로 정체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셰프 스스로 절대적으로 지켜오는 것이 있는데 바로 ‘프렌치 기법’이다.

“사람들은 클래식 프렌치라고 하면 무겁고, 느끼하고 때로는 지루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정통 프렌치 기법을 이용해 얼마든지 담백한 음식을 만들 수 있어요. 풍미는 진하되 식사 후 속이 편안한 음식이 바로 제가 추구하는 프렌치입니다.”

지난해 미슐랭 1스타를 수상한 장 셰프는 이를 두고 ‘보상 그 이상’이라고 표현했다. 운동을 딱히 하지 않았는데 최근 건강해야 오래 이 레스토랑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 수영을 시작했다고. 노장 셰프의 새로운 시작에 응원을 보낸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장새별 바앤다이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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