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지하에 ‘답’이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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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건축가 페로 교수 ‘서울세계건축대회’서 기조연설

도미니크 페로 스위스 로잔공대 교수가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본보 기자를 만나 포즈를 취했다. 그는 이날 지하공간 예찬론을 펼쳤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도미니크 페로 스위스 로잔공대 교수가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본보 기자를 만나 포즈를 취했다. 그는 이날 지하공간 예찬론을 펼쳤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도미니크 페로 스위스 로잔공대 교수(64)가 연단에 올랐다. 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건축가연맹(UIA) 2017 서울세계건축대회’의 기조연설자인 그는 단테의 지옥 그림부터 무대 영상에 띄웠다.

“흔히 지하 공간이라고 하면 숨 막히고 어두운 곳이라는 부정적 감정이 많이 떠오릅니다. 이런 근거 없는 고정관념을 뛰어넘는다면, 지하 공간은 흥미진진한 곳이 될 겁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1995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2003년) 등을 설계한 그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은 세계적 건축가다. 땅 밑을 ‘열린 공간’으로 보는 그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지을 땐 땅을 파내 지하 두 개 층에 고요한 열람실을 만들고 그 가운데 인공 정원을 꾸몄다. 인근 숲에서 가져온 나무들로 꾸민 지하 정원으로 햇빛이 쏟아져 내린다.

“철학자 볼테르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책을 모두 읽은 사람이 도서관의 마지막 책까지 읽고 나면 남은 건 무엇이겠는가. 그건 자연을 사색하는 것이다.’ 저는 지하 정원이 도서관의 심장부가 되길 원했습니다. 도서관 최후의 책, 제작할 수 없는 책, 그것은 정원….”

한 편의 시를 읊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고는 잔잔한 호숫가 영상을 보여줬다. “저는 요즘 이 스위스 제네바의 호수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 여러 상상을 해보고 있습니다. 만약 땅이 호수이고 도시가 그 위를 항해하는 배라면, 호수 속은 무한 가능성의 공간이니까요. 지하에 도시를 짓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을 지하로 확장하고자 하는 겁니다.”

그가 현재 주력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프랑스 파리 시테섬 리노베이션. 시테섬에는 사법부 청사 등 여러 행정기관이 있지만 공간의 활력과 주거 기능은 떨어진다. 150년 전 기존의 성(城)들을 철거하고 인위적으로 세운 건물이 많기 때문이다.

“시테섬은 섬 자체가 유적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곳에 뭐가 있는지 정작 잘 몰라요. 그래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때인 2015년, 시테 섬을 어떻게 보존할지 고민하다가 ‘기념비적인 섬’으로 변모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그는 시테섬으로의 접근성을 높이고 건물들의 지하를 대중교통과 연결시키는 방안들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올해 초 파리에서 열었다. 마침 파리가 2024년에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면서 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고 한다. “관광에도 기여하고 시민들을 위한 행정서비스도 극대화해야겠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이를 발전시키는 ‘시즌 2’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습니다.”

도미니크 페로 교수가 설계한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 동아일보DB
도미니크 페로 교수가 설계한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 동아일보DB
페로 교수는 2008년 서울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ECC)를 지어 국내에서도 유명해졌다. 내년이면 10주년이 되는 이 건물을 어떻게 돌아볼까. “건물이 아니라 환경(landscape)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캠퍼스와 커뮤니티의 경계를 허물어 사람들이 교류하게 된 것 같아요.” 그는 최근 서울시청 앞 광장을 지하로 파내 을지로까지 연결시키는 아이디어를 서울시 측에 전하기도 했다.

강연이 끝난 후 그를 만나 ‘왜 지하여야 하는가’를 재차 물었다.

“굳이 땅을 깊게 파낼 필요는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도시와 건축물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는 죄다 수직적이잖아요. 지하로 내려가면 공간의 수평적 확장, 감각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어요.”

무지개 색상의 스카프를 두른 ‘건축의 거장’은 마치 비밀을 알려준 듯 윙크를 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세계적 건축가 페로 교수.서울세계건축대회#지하공간#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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