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앞으로 얘랑 놀지 말자”고 아이가 말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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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따돌림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유치원에 다녀온 은정이(4)가 엄마에게 뜬금없이 이사를 가자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같은 반 소은이가 자기를 자꾸 따돌린다는 것이다. 소꿉놀이를 할 때도 끼워주지 않고, 다른 아이들한테 은정이랑 놀지 말라고 귓속말을 한단다. 그래서 오늘도 혼자 놀았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번에도 이런 일이 있어서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렸었다. 선생님은 다 같이 사이좋게 놀도록 잘 지도하겠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런데 개학하자마자 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엄마는 아무래도 소은이 엄마를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엄마와 나, 아빠와 나 등 양자 관계에서 벗어나 집단에 들어가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은 흔하게 발생한다. 원래 인간은 무리 안에서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사람을 끊임없이 솎아내려는 본능이 있다. 적을 골라내야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심지어 누군가의 험담을 해서 그 험담에 동참하는지 여부로 우리 편인지 아닌지를 가리기도 한다. 물론 이런 행동들은 좋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집단에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자체는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어른들의 대처다.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가르쳐주느냐에 따라 그 다음이 달라진다. 은정이를 따돌리는 소은이는 기질적으로 좀 세고 주도적인 아이일 수 있다. 이런 아이는 언제나 우두머리가 되어 무리를 이끌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놀기 싫은 아이를 다른 아이에게 “우리 쟤랑은 놀지 말자”라고 하기도 한다.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어른들은 보통 “친구가 얼마나 속상하겠니? 사이좋게 같이 놀아야지. 은정이도 좀 끼워 줘라”라고 타이른다. 그런데 이렇게 대처하면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솔직하다. 소은이가 은정이와 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그 아이의 마음이다.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무리 중에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 마음이 아니라 행동이다. 그런 마음이 있더라도 해도 되는 행동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 있다. 아이에게 그것을 가르쳐줘야 한다.

“사실 네가 은정이를 좋아할 이유는 없어. 사람은 싫은 사람도 있어. 같이 안 놀고 싶은 사람도 있어. 은정이랑 안 놀아도 돼. 그러나 그것을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해줘야 한다. 더불어 “다른 친구들의 마음은 네 마음과 다를 수 있어. ‘우리 은정이랑 놀지 말자’라고 주동하거나 ‘너 은정이랑 놀면 안 돼’라고 말해서는 안 돼. 그건 절대 안 되는 거야.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이야”라고 가르쳐줘야 한다.

주도적인 아이가 주동하는 그 말만 안 해도 다른 친구들은 은정이랑 그냥 같이 잘 놀 것이다. 주도적인 아이가 그 아이와 놀든 안 놀든 아이들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어릴수록 그렇다. 때문에 그런 상황이 발생하자마자 그런 말이나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알려주고, 하지 않도록 막아주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 사람은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면 안 된다. 어린아이라도 그렇다. 아무리 내가 싫은 사람이라도 “나 얘 싫어. 우리 앞으로 얘랑 놀지 말자”라고 말하는 것은 공개적인 망신이다. 이런 행동은 상대방의 영혼에 말할 수 없이 큰 상처를 주므로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은정이처럼 매번 따돌림 비슷한 것을 당하게 되는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줘야 하는 것이 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주는 미묘한 감정적인 자극을 잘 버텨내야 한다. 어느 집단에 가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 사람들까지 애써 친해지려고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 날 싫어해도 위축되지 않고 잘 버티면서 내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 그 문제를 잘 다뤄내는 능력은 좀 키워야 한다. 매번 주변 사람이 상황을 제대로 정리해주는 것으로는 언제나 편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너랑 오늘 안 놀아” 하면 “다음에 놀고 싶으면 놀자”라고 대답하라고 가르쳐주자. 누가 “우리 쟤랑 놀지 말자”라고 하면 “에이∼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지. 그러면 다음에 놀든가”라고 받아치도록 연습시키자. 한 번쯤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말한다고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어버린 아이의 마음이 한순간에 해결되지는 않지만 이런 말이라도 해야 마음이 진정이 되고 그 다음 대처를 생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사회적 기술은 어릴수록 잘 습득이 되고 앞으로의 사회성 향상에도 큰 도움을 준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따돌림#주도적인 아이#따돌림에 대한 어른들의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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