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동아/7월 10일]월북작가 박태원 사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0일 1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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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의 부음이 실린 동아일보 1986년 7월14일자 6면.
박태원의 부음이 실린 동아일보 1986년 7월14일자 6면.
‘월북 작가 박태원이 지난 10일 오후 오랜 병완 끝에 7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평양방송이 11일 보도했다. 박태원은 서울 출생으로 일본법정대를 중퇴한 후 단편소설 ’수염‘(30년 발표)으로 문단에 데뷔, 활발한 활동을 하다 6·25 동란 때 월북, 장편소설 ’갑오농민전쟁‘ 전3권 중 제1권을 출판(77년 4월)하는 등 주로 계급교양을 위주로 한 작품 활동에 주력해왔다.’

동아일보 1986년 7월14일자 6면에 짧은 기사가 실렸다. 나흘 전 세상을 떠난 박태원의 부음 소식이었다. 그가 월북한 뒤 남한의 가족들이 1964년 사망신고를 냈으나 실제의 삶은 22년 뒤에 마쳐졌다. 지금이야 교과서를 통해 청소년기부터 만나게 되는 유명한 소설가이지만, 이 부음이 실리기 전까지 그는 금기시됐던 작가였다. ‘월북(越北)’이라는 이력 때문이었다.
절친했던 문우 이상과 함께 한 박태원(오른쪽).  동아일보 DB
절친했던 문우 이상과 함께 한 박태원(오른쪽). 동아일보 DB

1988년 해금 조처가 시행되면서 그의 이름은 복원됐다.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등 한국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들이 소개됐다. 실명과 뇌출혈로 인한 전신불수 중에도 아내에게 구술하면서 장편 ‘갑오농민전쟁’을 완성한 것이 알려지면서(동아일보 1993년 10월10일자) 집요한 창작열도 주목받았다.

차남 재영 씨는 해금 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1988년 7월23일)에서 “어렸을 적 부친의 산책길에 자주 따라다녔다. 소박하고 다정다감했던 분”이라고 회고하면서 “아버지의 직업을 따를까도 했으나 어머니가 간곡하게 만류해 접었다”고 털어놓았다. 작가의 예술 혼은 삼대 째 이르러 발현됐다. 최근 영화 ‘옥자’로 핫이슈가 된 영화감독 봉준호 씨가 박태원의 외손자다.
박태원의 예술적 재능은 외손자인 봉준호 감독에게 내림했다. 사진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동아일보 DB
박태원의 예술적 재능은 외손자인 봉준호 감독에게 내림했다. 사진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 동아일보 DB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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