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우 셰프의 오늘 뭐 먹지?]막국수, 메밀로 빚어낸 여름의 맛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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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봉평 고향메밀촌의 물 막국수. 정신우 씨 제공
서울 서초구 봉평 고향메밀촌의 물 막국수. 정신우 씨 제공
정신우 플레이트 키친 스튜디오 셰프·일명 잡식남
정신우 플레이트 키친 스튜디오 셰프·일명 잡식남
“막국수 먹을 줄 모르는구나.”

그런 사람 참 많다. 내가 아는 것만 옳고 남이 아는 것은 틀리다고 말하는 사람들. “막국수 먹는 법이 뭐 따로 있나?” 가위로 면을 몇 번 자르고 열무김치를 수북이 넣고 젓가락으로 비벼낸다. 그 다음 동치미 육수를 조금 붓는다. 삶은 계란은 늘 마지막. 다른 사람이 보더니 한마디 거든다. “면 맛 떨어져요!”

나는 경기 여주에 친한 친구가 살고 있어 여주 천서리 막국수에 대해 제법 안다. 조선시대 남한강의 4대 나루터 중 하나였던 여주 이포나루는 이천에서 서울까지 전국의 공납품이 운송되던 중요한 배개(배가 닿는 터)였다. 강원 홍천에서 뱃길을 따라 여주까지 자리를 잡은 이북 실향민들이 평안도식 막국수를 만들어 장사를 시작했는데 맑은 김칫국을 곁들여 먹는 진한 맛이 특징이다.

과거 강원 춘천의 명동거리였던 중앙동의 막국수 집들이 유명했다. 외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막국수를 강원도의 향토 음식으로 찾게 되면서, ‘춘천 막국수’뿐 아니라 평창, 속초, 양양 등등 강원도 곳곳에 막국수 집들이 생겨났다.

강원도에 많은 막국수 집이 생겨난 것은 메밀 덕분이다. 24절기 중 9번째 절기인 망종(양력 6월 6일)에는 보통 씨 뿌리기를 한다. 보리 베기를 하기 좋은 때이기도 하다. 보리 베기를 하고 나면 모내기를 시작하는데 가뭄이 든 해에는 모 대신에 메밀을 심어 집마다 메밀 싹이 풍년이었다.

그 덕분에 메밀은 흉년에 밥 대신 먹는 국수의 재료가 됐다. 산간지역의 화전민들이 불을 지피고 난 뒤 밭마다 메밀을 일궜지만 1970년대 이후로는 전국 각지에서 메밀 경작을 통해 메밀가루가 출하되어 널리 사용됐다. 경남의 의령 소바(메밀국수)와 광주의 메밀 집도 이때 생겨났다. 의령 소바의 원형은 소고기 육수에 채소를 곁들여 먹는 온면 소바였다. 전라도 메밀국수인 모밀은 멸치국물에 말아먹는 메밀 온면(溫麵)이었다. 최근엔 냉국수로도 판매된다.

메밀은 중국에서 전래됐지만 중국의 면(麵)은 대부분 밀가루 면이다. 일본의 소바(そば)와 막국수는 전혀 다르다. 1670년(현종 11년)경 정부인 안동 장씨(貞夫人 安東 張氏)가 쓴 조리서 ‘음식디미방’에도 메밀국수가 나온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막국수를 먹어봤다. 예전처럼 고춧가루, 마늘, 간장, 참기름에 투박하게 면을 양념해서 생채와 꿩고기를 고명으로 올려 먹던 국수는 보기 어렵다. 그저 새까맣게 김 서리와 통깨 폭탄을 맞은 살짝 언 동치미 물 막국수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무더운 오후에는 막국수의 시원하고, 고소하고, 담백한 국물 맛이 당긴다. 이렇게 맛있는 메밀국수는 우리나라에만 있으니까 말이다.

정신우 플레이트 키친 스튜디오 셰프·일명 잡식남 cafe.naver.com/platestudio

○ 봉평 고향메밀촌: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45길 26, 02-517-7888, 막국수 7000원
○ 샘밭 막국수: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24길 27 G5센트럴프라자 B1, 02-585-1702, 막국수 9000원
○ 봉평 메밀막국수: 경기 과천시 과천대로 628, 02-504-0002, 막국수 7000원
#막국수#메밀#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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