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백성을 저버린 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새로 정사를 펼치는 처음에 가장 먼저 힘써야 하는 것은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新政之初所當先務者在3民
(신정지초 소당선무자 재휼민)

―중종실록
 
연산군은 온갖 학정과 난잡한 짓을 일삼다 왕위에서 쫓겨났고,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중종은 왕위에 오른 첫날부터 전왕이 저질렀던 폐단을 바로잡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가장 먼저 연산군을 교동(喬桐)에 위리안치했고, 연산군의 총애를 받으며 실정을 부추긴 장녹수 등은 가산을 몰수하고 참형에 처하였다. 총애하는 기생들에게 주었던 보물들은 반납하게 하였고, 억울하게 쫓겨났던 관원들의 신원은 회복해 주었으며, 혁파되었던 관사를 다시 설치하고 쓸데없이 만들었던 관사는 도로 없앴다. 각 지방에서 무리하게 거둬들였던 온갖 공물을 더 이상 바치지 않게 하였고, 개인들에게 거둬들였던 각종 기물들도 다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하였다.

연산군의 12년 재위 기간에 쌓인 문제들이 어디 한두 가지였겠는가. 중종은 수많은 개혁과 혁파를 계속 이어나갔는데, 위의 말은 그러던 와중에 정승들과 승정원의 관원이 함께 왕에게 진언한 말이다. 전왕이 임금의 자격을 잃은 이유는 많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바로 백성을 저버린 것이다. 백성을 도탄에 빠뜨려 민심을 잃은 자가 어찌 왕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는가. 이런 왕을 대신한 것이라면 첫째도 백성, 둘째도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 잘못된 이를 벌주는 것도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제도를 바꾸는 것도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는 것도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에는 많은 일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한꺼번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니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고, 사람 간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할 것이고, 많은 비방도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목적에 충실히 부합한다면 사소한 잘못은 있을 수 있겠지만 뜻한 바를 이루는 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국민을 잘살게 만드는 것이며, 나라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과 일부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오직 국민만을 기준으로 삼아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나간다면 잘 다스려진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며, 그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존재 이유와 부합하는 나라가 진정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겠는가.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연산군#중종실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