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된소리와 연결되는 사이시옷의 놀라운 법칙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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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 국어국문학
김남미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 국어국문학
사이시옷에 불만을 제기한 수강생이 있었다. “왜 머릿속입니까? 머리속이라 쓰면 훨씬 편한데요.” 간단한 것을 왜 복잡하게 하느냐는 분노에 가까운 소리였다. “제가 안 그랬는데요.” 자연스럽게 1970년대 유머로 대응했다. 그러면 누가 그랬을까. 사실 한글 맞춤법의 ‘ㅅ’ 표기에 불만을 품은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그런 불만에도 맞춤법에서 금방 사이시옷 표기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 왜 그럴까?

‘머리’에 ‘방’을 더하여 소리 내 보자. [머리방]이라 하지 [머/빵/머리빵]이라 발음하지 않는다. ‘머리’에 ‘속’을 더하여 발음해 보자. [머/쏙/머리쏙]이라 하지 [머리속]이라 하지 않는다. 혹 자신이 [머리속]이라 소리 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장에 넣어서 확인해 보라.

―맞춤법을 생각하니 머릿속이 아프다.

문장에서 이 단어는 [머/쏙/머리쏙]으로 소리 난다. 왜 문장 속인가? 맞춤법은 일상적 발음으로 정해진다. 일상적 발음은 문장 속에서 나오는 발음이다.

우리는 분명 ‘머리’에 ‘속’을 더했는데 왜 ‘ㅅ’이 ‘ㅆ’이 되었을까? 우리의 머릿속 규칙 때문이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앞말의 받침에 ‘ㅂ, ㄷ, ㄱ’이 있으면 뒤의 첫소리를 된소리로 만드는 규칙이 있다. 된소리는 ‘ㄲ, ㄸ, ㅃ, ㅆ, ㅉ’다. 실제 단어로 실험해 보자.

―밥보, 닫다, 국보

뒷말의 ‘보, 다, 보’가 ‘뽀, 따, 뽀’로 소리 난다. 이 규칙은 아주 강력하여서 예외가 없다. 우리말에 없는 단어들로 실험해도 모두 뒷말의 자음이 된소리로 난다. ‘압달’ ‘닫보’와 같이 없는 단어를 만들어 읽어 봐도 우리는 된소리로 발음을 한다.

이 된소리 규칙과 ‘머릿속’이 무슨 관계인가. ‘머리+속’인데 뒷말의 ‘속’이 ‘쏙’이 되었다. 이는 ‘머리’와 ‘속’ 사이에 위의 강력한 규칙이 적용되었다는 말이며 앞말에 받침이 있다는 말이다. 그 받침이 ‘ㅅ’이다. ‘ㅅ’은 받침에서 ‘ㄷ’으로 소리 난다. 역시 우리가 그렇게 말한다. ‘옷’의 받침소리를 확인해 보자. [1]이다. 사실 ‘머릿속’의 ‘ㅅ’은 누군가가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가 [머/쏙/머리쏙]이라 소리 내기에 ‘머리’와 ‘속’ 사이에 ‘ㅅ’을 적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머리방’과 ‘머릿속’ 표기의 사연이다. 이 ‘ㅅ’은 ‘∼의’의 의미로 세종대왕 시절에도 쓰인 것이다. 그 긴 세월에 이 ‘ㅅ’이 많이 복잡해졌다. 그래서 우리말 표기 중 제법 어려운 것 중 하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콧김, 머릿속, 등굣길, 하굣길

이들을 ‘코김, 머리속, 등교길, 하교길’로 쓰면 간결하고 의미도 분명해질 것이라는 불만이 많다 했다. 하지만 불만 너머에 먼저 경탄할 일이 있다. 우리는 사이시옷을 써야 할 이 단어들을 정확히 된소리로 발음한다. 배우지 않았는데도 자동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 규칙들 덕분에 우리가 우리말답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규칙들을 훌륭하게 활용하는 능력자들이다. 맞춤법을 배운다는 것은 우리 안의 규칙들을 확인하는 일이다. 표기가 우리의 발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발음이 표기를 만드는 것이다.
 
김남미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 국어국문학
#된소리 연결#사이시옷 법칙#등굣길#하굣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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